냉이꽃 냉이꽃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5.31
아카시아 아카시아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김사인-- 봄바람 속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하다. 아카시아 꽃은 이삭 같고, 원뿔 같고, 흰쌀..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5.24
청매실이 여무는 집 청매실이 여무는 집 저것들이 내 집에서 꽃을 피오고 열매 속에 매실즙을 그득그득 눌러 담는 동안, 어느 사람이 처방전을 받으러 병원엘 드나드는 동안 5월이 가버리고 봄도 다 가버렸는데--- --이건청--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혔다. 매실나무에는 달고 새콤하고 푸른 매실이 열려 열..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5.17
춘천 춘천 소설가 오정희씨가 서울 나들이를 위해 춘천역사에 들어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금테 모자를 눌러쓴 귀밑머리 희끗한 역장이 다가와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오 선생님, 춘천을 너무 오래 비워두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측백나무 울타리 가에서 서울행 열차의 꽁무니가 안 보일 ..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5.11
미안하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 사랑에게 가려면 첩첩 연봉을 넘어야 한다. 먼 길을 가..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5.03
애플 스토어 애플 스토어 숲이 된 나무들은 그림자를 쪼개는 데 열중한다 새들은 부리가 낀 곳에서 제 소리를 낸다 다른 방향에서 자란 꽃들이 하나의 꽃병에 꽂힌다 늙은 엄마는 심장으로 기어들어가고 의자는 허공을 단련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신맛과 단맛이 뒤엉킬 때까지 사..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4.20
나비 나비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송찬호-- 봄이 와서 나비를 공중에 풀어 놓고 있다. 나비는 날개..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4.04
와락 와락 반 평도 채 못 되는 네 살갖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한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 --정끝별-- '와락' 이라는 낱말에는 갑자기 솟구..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3.28
예쁜 꽃 예쁜 꽃 이제 더 이상 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꽃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므로 그러다 마침내 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새벽 산책길에서 한낮의 호젓한 산길에서 행여 그 꽃을 보게 되면 그냥 생각만 하리 건들거리는 바람처럼… “이쁜 꽃이 피었네” --박찬-- 남쪽 ..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3.21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좋은가 날이 풀려 얇은 장갑을 끼니 얼마나 좋은가. (흑한에 두꺼운 장갑을 끼는 것도 좋았는데) 날이 풀려 빙판이 녹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벼운 운동화를 신는 것도 좋을시고 (빙판길에 좋은, 신발을 신는 것도 좋았거늘) 이런 느낌이 찰랑대는 거기가 시중(時中) 아닌가 그렇다면.. 가슴으로 읽는 시 2014.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