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타워 다음에 오는 열차처럼 15분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때마다 나타나는 상냥한 그녀는 시간의 문지기 같다 누구라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관광객들은 정확한 곳에 줄을 서 있었다 빨간 소화기는 20세기 골동품 같다 사람들은 수초에 감긴 인어처럼 이상하고 신비해진다 아직 ..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4.01
음지식물 /김성규 음지식물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 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光量)을 조절하고 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왔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현상이 있음을 안다 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3.20
둥근 등 둥근 등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을 매만져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3.13
올렛길 올렛길 하루 종일 바다가 와서 촐랑이는 야트막한 초가집 돌담 밖에 올렛길, 노란 유채밭길을 가노라면 멀리 눈 덮인 한라산(漢拏山) 머리 눈 녹는 소리에 하르르하르르 시나브로 지는 유채꽃 꽃잎 사이로 다복다복 솔나무 숲이 바라다보이고, 이따금 고기잡이배들이 하얀 물살을 가르는..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3.04
수치포구 수치포구 만(灣), 등이 휘도록 늙었으나 우묵한 가슴엔 군데군데 섬이 씹힌다. 질긴, 질긴 해소기침을 문 파도소리에 또 새벽은 풀려서 연탄가스 냄새 나는 색깔이다. 푸르스름한 풍파의 주름 많은 남루, 때 전 한이불 속 발장난치며 들썩대며 킬킬거리다 가랑이 서로 뒤얽힌 채 밤새도록 ..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2.27
털실 따라 하기 털실 따라 하기 이 털실은 부드럽다. 이 폭설은 따뜻하다. 이 털실은 누가 던졌기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털실로 뭐 할까 물고기는 물고기를 멈추지 않고 돌아다닙니다. 끌고 가고 끌려가고 이 털실은 돌아다닙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갑니다. 이 선반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놓..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2.17
얼굴 얼굴 너의 얼굴이 흐른다. 너의 얼굴이 비낀다. 너의 거울. 너의 얼굴. 나는 너의 얼굴을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낙엽이 흐를 때. 새가 솟을 때. 나는 어디에서나 너의 얼굴을 만졌다. 나는 어디에서나 너의 얼굴 안에 있었다. 아무것도 지우지 못했다. 너는 언제나 잊히는 얼굴 하나였다. ..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2.16
새 새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지저귀고 있다. 이 세상에선 들을 수 없는 고운 소리가 천체에 반짝이곤 한다. 나는 인왕산 한 기슭 납작집에 사는 산사람이다. ―김종삼(1921~1984) 한 마리의 새가 노래하고 있다. 새는 아마도 나목(裸木)의 가지 위에 앉..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2.11
왜가리 왜가리 이른 아침 개울가 밭두렁에 왜가리 한 마리가 외발로 서 있다 서천(西天)으로 돌아가기 전 달마처럼 잔뜩 웅크린 채 눈이 채 녹지 않은 허연 밭뙈기를 바라보고 있다 잿빛 등에는 해진 짚신 한 짝, 눈이 다 녹으면 그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이홍섭(1965~ ) 왜가리 한 마리가 움직..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1.26
바보처럼 웃으리 /이철원바보처럼 웃으리 하늘 봐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봐도 들길가는 사람 구멍가게 앞 빈 의자 봐도 들길위에 서 있는 사람 봐도 웃으리 웃으리 바보처럼 웃으리 바다 봐도 바다에 떠 있는기선 봐도 바다 아래 물길 가는 고기들 봐도 돌멩이 돌멩이 앞 물고기들 봐도 돌멩이위에 서 있.. 가슴으로 읽는 시 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