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꽃 저 꽃 앞으로 산책 거리 줄일 땐 어디를 반환점으로? 학수 약수터? 남묘(南廟)? 아직은 집에서 너무 지척인 남묘를 향해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에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꽤 숨찬 언덕길을 오르다 만나는, 담 헐고 만든 꽃밭, 허나 다른 꽃들 자리 뜬 조그만 마당에 부용꽃. 내가 여름 꽃 ..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7.07
눈사람 스텝 눈사람 스텝 골목을 휘젓고 간 아이들 어지러운 발자국 끝에는 눈사람이 둘 막대기 입술 가려웠던 사람과 돌멩이 눈이 침침했던 사람 골목의 마지막 불이 꺼지자 몸속에 숨겨둔 손과 발을 꺼내놓네 잡은 손 녹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 발자국마다 발바닥을 맞추며 겨울의 스텝을 밟네 말..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7.04
마흔다섯 마흔다섯 자꾸 입안이 헐어서 병원을 찾았으나 낫지 않는다 한의사 친구를 찾아갔더니 맥도 짚어보고 입속도 들여다보더니 처방을 해줬다 마음을 좀 곱게 쓰고 상처 주는 말을 좀 그만하라는 게 처방의 전부였다 나는 성질이 못돼먹어서 자꾸 입병이 난다고 했다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줘..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3.25
멀리 가는 울음 멀리 가는 울음 바늘이 쏟아질 듯한 전나무 숲을 딛고 와서 아니 바늘의 그늘을 겨우 딛고 와서 마침내 서보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 한 층 더 한 층 더 당신의 모든 간절함 위에 딱 한 층 더 낮달 슬쩍 얹어놓고 가는 바람 종을 때리고 가다 끝내 자신도 울고야 마는 바람 배웅하며 손끝..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3.03
써레 써레 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1.22
수종사 풍경 수종사 풍경 양수강이 봄물을 산으로 퍼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공광규(1960~ ) 산에는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이 짙.. 가슴으로 읽는 시 2017.01.02
홍시 홍시 툭! 가슴이 철렁 우주가 떨어진다 빠알간 햇홍시 하나 제 색깔 못 이겨, 그 우주 맛있게 통째로 삼키는 이 가을 ―박준영(1940~) 가을이 익는다. 산도 들도 오색(五色)의 색채를 보태고 있다. 이 가을의 우주가 하나의 잘 익은 과실이다. 시인은 햇홍시 하나가 맛이 들고 잘 여물어 떨어.. 가슴으로 읽는 시 2016.12.29
저 꽃 저 꽃 앞으로 산책 거리 줄일 땐 어디를 반환점으로? 학수 약수터? 남묘(南廟)? 아직은 집에서 너무 지척인 남묘를 향해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에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꽤 숨찬 언덕길을 오르다 만나는, 담 헐고 만든 꽃밭, 허나 다른 꽃들 자리 뜬 조그만 마당에 부용꽃. 내가 여름 꽃 .. 가슴으로 읽는 시 2016.12.28
눈사람 스텝 눈사람 스텝 골목을 휘젓고 간 아이들 어지러운 발자국 끝에는 눈사람이 둘 막대기 입술 가려웠던 사람과 돌멩이 눈이 침침했던 사람 골목의 마지막 불이 꺼지자 몸속에 숨겨둔 손과 발을 꺼내놓네 잡은 손 녹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 발자국마다 발바닥을 맞추며 겨울의 스텝을 밟네 말.. 가슴으로 읽는 시 2016.12.27
[시인 유희경이 추천하는 시집 3] [시인 유희경이 추천하는 시집 3] 며칠 전 꽃다발을 든 청년이 가게에 왔다. 공들여 시집을 골라온 그에게 고백하러 가시는 길이냐, 하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기만 한다. 정성껏 포장해 들려 보낸 내 귀에 다른 손님들의 대화가 들렸다. "시집을 선물로 주려나 봐. 시집으로 될까?" 어떻게 들.. 가슴으로 읽는 시 2016.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