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맑다 참 맑다 '우리 딸 시집가는 날' 달력에 크게 쓰고 아침이 참 맑다며 이불을 널다가 노을을 흠뻑 쏟아놓고 깔깔 웃는 엄마야 흘러간 어느 날의 구름 위를 거니는지 꽃이불 머리에 쓰고 사뿐히 앉았다가 춘화를 그린 밤처럼 붉어지는 엄마야 가볼 수 없는 그곳은 명징한 슬픔이라 엄마는 희..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5.06.02
속리(俗裏) 속리(俗裏) 가장 아픈 자리에 한 채 집을 지었다 사랑한다! 귓속말 불어넣은 누옥(陋屋) 참새가 들락거렸다 다섯 개 알 낳았다 ―이교상(1963~ ) 새로운 한 해의 시작. 해가 바뀌면 뭔가 새로워질까. 하루와 달과 해라는 시간의 단위는 달력을 바꿀 때 가장 실감 난다. 그렇게 묵은해를 보내..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5.01.20
외계인을 기다리며 외계인을 기다리며 끽해야 20광년 저기 저, 천칭자리 한 방울 글썽이며 저 별이 나를 보네 공평한 저울에 앉은 글리제 581g! 낮에 본 영화처럼 비행접시 잡아타고 마땅한 저곳으로 나는 꼭 날아가리 숨 쉬는 별빛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리 녹색 피 심장이 부푼 꿈속의 ET 만나 새큼한 나무 그..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5.01.18
입동 부근 立冬 부근 광평 소머리국밥집 맑은 햇살 따스하다 때 이른 점심을 먹다 창밖을 본다 빈 뜨락 내리는 참새 부리짓이 바쁘다 주섬주섬 옷 챙겨 자리를 일어나면 먹었던 뜨건 국물 땀으로 솟는 한끼 또 한 해 건너는 길목 모두 바쁜 초겨울 --강인순-- 어느새 입동 (7일) 이다. 겨울 입구에 섰..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11.21
귀 귀 그냥 두어도 될 걸 또 건드리고 말았다 속삭임도 느껴야 할 한 겹의 상피세포를 미어도 미워하지 않으며 면봉으로 닦는다 달팽이관 어디쯤에 그리움이 사나보다 한 쪽이 불편하면 다른 쪽도 따라 불편한 서로가 그리며 살아 사뭇 아픈 관계여 --권혁모-- 윤구월, 드물게 만나는 구월 윤..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10.26
감국향기 감국향기 기우는 꽃빛 받아 가실하는 바람 속에 오래 참은 약속처럼 잘 익은 가을 산에 뜨겁게 묻어둔 말이 등성이에 환하다 잡힐 듯 내달리는 저만치 시간을 따라 열일곱 혹은 열여덟, 볼이 불던 그 시절에 한번쯤 맡았음직한 그 내음이 묻어난다 계절을 건너와서 깃을 치는 단풍처럼 내..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10.18
안경알을 닦으며 안경알을 닦으며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열린 청천 같은 어둠을 쓸어간 뒤 새 아침의 쾌청 같은 안경알 투명한 정을 나는 알고 사는가. 날마다 이맘때면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내 항상 버릇처럼 안경알을 닦는다만 진실로 닦아야 할 것을 나는 닦고 사는가. --유선-- 안경은 이제 누구나 ..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09.26
강변사연江邊詞緣 강변사연江邊詞緣 모래알도 물이끼도 그걸 가꾸는 별살도 끼리 끼리 어우러져 질펀히 반짝이어 강가엔 강도 많대나, 물끼리만 굳이 강이랴. 너랑 나랑 온전히 끼리로만 어우러져 서로를 반짝이고 맞비추면 이 강가, 우리도 흘러 강리리, 날로 새로 영원永遠하는, 모래알에 끼어도 보고 ..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09.19
일곱 빛갈 일곱 빛갈 어머니는 혼신을 다해 그릇을 만드셨다 그중 하나는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나머지 여섯 그릇은 덧칠을 하고 있다 금이 간 그릇은 자꾸 눈물을 쏟고 잘 닦인 그릇은 반짝, 주위를 밝혀준다 명절엔 제 빛으로 서로 벌어진 틈을 메운다 --김선화-- 예전 명절은 남녀노소 모두 ..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09.13
사과꽃 핀 자리 사과꽃 핀 자리 올해 핀 사과꽃은 아물지 않은 총상 같소 못 다 열고 저문 이들 작은 손 맞잡고 산 자는 목메고 마는 흰 밥 한 상 차렸소 바람결에 실려 온 눈물 젓은 숨소리를 품에 안고 다독이는 꽃들 앞에 부끄러워 진 자리 붉은 응어리는 내 어찌 보겠소 --이재경-- 빨간 사과가 나울 즈.. 가슴으로 읽는 시조 201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