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누가복음 16:14~31)③[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꽈벼기 2021. 2. 20. 08:40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누가복음 16:14~31)

 

14~18,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 면에서 자기가 바로 섰다고 자긍하였지만 현실 생활면에선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열심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란 한 마디의 평으로 평가될 만큼 물욕에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어쨌든 바리새인들은 그 자신이 율법의 정통적 수호자이며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로 자처하였지만, 실상은 이중인격자로서 또한 모순된 신앙관을 지닌 자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만한 자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경건하고 율법을 잘 지키며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 교훈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교훈의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그릇된 율법 관을 지적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 구약 시대에는 세례요한의 때까지 끝나고 그 후부터는 신약 시대 즉 은혜 시대가 열렸는데, 은혜 시대의 특징은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파된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는 다고해서 율법이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를 배격하지만,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반 율법주의도 물리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릇된 가치관을 깨우쳐 주기 위해 율법의 가치와 바른 이해를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19~31, 부자의 큰 실수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마침내 천국에 간 이유는 그의 고통과 가난 때문이 아니요, 그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우리가 복음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집니다. 죽은 후에는 이 운명이 바뀔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는 세상에서는 부유해 보여도 사실상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죽어가는 나사로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우리의 선행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더라도 상벌의 기준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는 중 형제를 생각했습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자도 자기 자식만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죽어서 음부에 들어간 후에는 생존 세계의 형제들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오기 전에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거지 나사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의 처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나사로보다 많은 부를 누리고 호의호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한 성도의 길에는 많은 환난과 고뇌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확실한 내세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을 잊고 산적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삶으로 고백하길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