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누가복음 17:11~19)[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꽈벼기 2021. 2. 22. 08:30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누가복음 17:11~19)

 

누가에게 있어 초자연적인 권능은 언제나 예수님의 신성 및 전하신 말씀을 증언해 주는 산 증거의 역할로서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열 문둥병자를 치유하신 본 이적 기사는 그분의 가르침과 교훈의 권위 및 확실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본 이적 기사가 여기에 실린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란 대문단의 후반부에는 예수님의 교훈적 말씀에 대한 양분된 반응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긴 하여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적 기득권자들과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세리와 죄인들의 반응이 그것입니다.

 

본문에도 역시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감사하지 않았지만, 오직 한 명의 사마리아인만이 주께 감사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두 가지의 대조적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것이 누가의 의도이든 주님 자신의 의도이든 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길에서 일어난 이 이적은 제자 훈련과 긴밀한 연관을 맺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엮어진 대문단의 내용에 대한 예언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다 같이 고침을 받았으면서도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예수께 돌아와 감사하였을 뿐 나머지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감사치 아니한 본문의 사건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음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으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자만이 더 큰 은혜와 긍휼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실상은 인간의 육적 소욕에 주된 관심을 둔 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의 은혜를 입은 자 중 상당수가 배반하고 대적하거나 도망했듯이 자신의 욕구가 만족하였을 때엔 언제든지 믿음의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은혜를 입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에 감사치 않았지만, 이방인은 감사할 줄 알았던 사실에서, 우리는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기어지게 된 예표를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는 육신의 고침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도 온전함을 받았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온갖 종류의 죄를 짓게 만드는 토양이 됩니다.

 

늘 감사하며 지내길 원합니다.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새롭게 넘쳐 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