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꽈벼기 2016. 9. 30. 08:40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 4:1~11)

 

1~5,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 사건이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에 대해 심히 분개하고 있습니다. 원수의 나라인 니느웨가 회개한 것에 대하여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히 니느웨에 임하여 그들이 회개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러한 요나의 불평은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을 거부했던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적대 국가인 니느웨에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한 왜곡된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불만입니다.

 

자신의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40 일만 지나면 멸망하리라는 예언이 거짓으로 판명 남으로써 요나는 선지자로서 자신의 위신이 실추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심판 선언을 하고 나서 그 성이 정말로 멸망하는지 초막을 짓고 살펴보았지만, 오히려 그 성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철회되자 불평을 쏟았던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의 편협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 이다고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분명히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40일이 지나도 그 성이 멀쩡하므로 거짓 예언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기원은 자신의 위신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기도였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요나의 경직된 사고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상실하게 된 궁극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6~11, 하나님이 박넝쿨을 준비하신 이유는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로부터 괴로움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자기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박넝쿨을 보고 크게 즐거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박넝쿨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니느웨의 멸망을 기다리는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징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신 것은 요나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박넝쿨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과 니느웨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하나님의 섭리를 요나에게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 구원에 대한 가치를 요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이 박넝쿨을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권면에도 요나의 잘못된 선민의식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완강한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 높게 묘사합니다. 이방인 구원을 싫어하는 모습을 바로 보여 줍니다. 요나는 죽기를 고집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요나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며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책망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 위에서 대속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먼저 돌아보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에도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나에게 질투와 교만 같은 것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관심은 내 가정, 내 가족에 대한 것만 염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이웃과 열방의 뭇 영혼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