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호세아 13:1~16)②[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꽈벼기 2024. 12. 7. 08:11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세아 13:1~16)

 

1~8,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외에 어떤 구원주도 찾을 수 없는데도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찾는 등 제멋대로 산 것은 선민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듭니다. 그들이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을 새로 만든 신을 이용하여 달성하려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였기에 감각적이고 지속한 것에 관심을 끌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식과 목적은 쾌락과 정욕 등 인본주의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분노를 계속 자극한 그들의 상태가 돌변하리라고 경고합니다. 그분은 사자처럼, 혹은 표범처럼 갑작스럽게 간섭하시어 반역한 백성들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은 양무리를 먹이는 목자처럼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지만, 마침내 잔혹하게 먹이를 물어뜯는 들짐승처럼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처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안개와 이슬, 쭉정이와 연기처럼 될 것이라면서 그들을 최후로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9~16,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였기에 이스라엘은 완전하게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셨고 왕이 없었으나 왕을 가진 이방 국가보다 훨씬 더 통치가 잘 되었습니다. 군사 없는 그들이었지만 여호와의 군대와 군대 장관이 대신해서 전투함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왕을 거절하고 그들 가운데서 대표를 뽑아 세운 자도 거부해버렸고 뽑혀 나온 자도 제멋대로 하였습니다.

 

특별히 13절은 이스라엘을 갑자기 진통이 닥친 산모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자에게 멸망이 임한다는 예고입니다. 이스라엘이 너무나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종종 하나님이 주시는 견책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어쩌면 심판을 완화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14절은 이스라엘이 죄악의 대가로 망하여 암울한 처지에 빠지겠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능히 소생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음부의 권세를 음부의 권세를 능가하는 권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패망을 보는 경건한 자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됩니다. 전혀 소망이 없는 듯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나타날 것입니다.

 

15절에서는 동풍이 결실한 열매에 불어 닥친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모든 생존 노력이 수포가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동풍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살만에셀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본 장은 인간들 사이의 반역이 묵인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배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임을 알려 줍니다.

 

16절은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비극입니다. 사랑을 배반할 때는 혹심한 질투가 유발됩니다. 완전한 하나님을 배반한 사마리아는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마지막 멸망입니다. 비참한 멸망입니다. 어린아이, 아이 밴 여인이 마지막으로 멸망당합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은 성도에게 더욱 헌신하기 위함입니다. 생존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망각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음부의 권세를 물리칠 만큼 전능하시므로 성도는 언제나 그분과 교제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를 불러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속량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는 절망은 희망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게 됩니다. 역동적인 삶을 통해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겸손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최선의 것을 알고 도우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분리하며, 내 마음에 참 평화와 기쁨을 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최선의 것을 알고 도우시는 분이심을 알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