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호세아 11:1~11)②[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꽈벼기 2024. 12. 7. 08:02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호세아 11:1~11)

 

1~7,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랑받을 수 있는 아무 공로나 가치도 없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속박 아래 있을 때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음도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구원의 희망이 거의 없는 절망적인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의 형편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사랑을 주셨기에 이스라엘이 그분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죄, 죽음, 지옥에서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까지 은혜를 주십니다. 이처럼 심판의 대상이 되는 자들에 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도 주셨습니다. 그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 머물 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매일의 양식을 공급하므로 이스라엘에 평안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생존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과 영원히 싸우리라는 약속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중보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교육시키고 그들에 선민이 걸어갈 바른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인간의 교육과 사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확실하지 못한 것이어서 인간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는 육의 양식뿐 아니라 영의 양식도 하나님이 제공하심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삶의 근원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과 달리 이스라엘은 인간적, 세상적 방식과 계획대로 나라를 보존하려 했습니다. 인간이 교활한 계교와 속임수로 생존하려 할 때 참된 유익보다는 스스로 넘어지고 자기 꾀에 빠지게 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파멸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데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8~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대로 심판하신다면 그들은 아드마, 스보임과 같이 아주 멸망하여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으로 자기 백성을 아버지처럼 돌보시기에 그들을 잠시 징계하신 후 용서합니다. 선지자는 타락한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 있는 경건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을 시대가 오리라고 예언합니다.

 

호세아는 미래의 사람들이 여호와를 좇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전합니다. 성령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뿐 아니라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이런 사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란 구절이 증명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지도자로 나타나셔서 성도를 인도하실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사자처럼 막강한 것이기에 인간을 죄에 물들게 하는 모든 원수를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방해와 장애가 있더라도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분을 좇는 가운데 풍성한 구원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성품을 지니셨기에 성도들이 지속으로 은혜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기에 성도들은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은 경건한 자이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경건의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셔서 자녀들의 죄에 대해 벌하시고자 분노하시지만, 그들이 돌아온다면 그런 것은 상관치 않습니다.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평화롭고 안전한 삶으로 이끄십니다. 나의 삶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며 항상 죄에서 돌아오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