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아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예레미야 2:1~19)②
1~3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소개합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누리게 된 축복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회상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이 사랑으로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초기에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 적 사랑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보이고 충성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으므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광야의 삶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 신을 숭배하는 영적 간음을 함으로써 혼인 관계를 파괴한 것입니다.
초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수확하신 첫 열매로서 ‘하나님의 성물’로 구별되었습니다. 마치 수확의 첫 소산이 하나님의 몫으로서 오직 그분에게만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열방들을 수확하면서 할당되는 하나님의 몫의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단순히 좋은 추억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배신에 대한 깊은 슬픔과 함께 미래의 소망을 제시하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바로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현재의 배도 행각과 초기의 고귀한 사랑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이라기보다는 진정한 회개를 통한 희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4~8절, 왜 하나님을 멀리하는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처럼 거짓말도 안하시고 인생들처럼 변덕을 부리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는 이유는 불의함이 없는 하나님에게 무슨 불의함을 보았다는 것인지 조상들처럼 허수아비를 따르다가 허수아비가 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자기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해주신 하나님을 더는 찾지 않았습니다.
9~13절, 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산 곳에 가서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결혼 상대자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유다 백성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영광의 하나님을 무가치한 우상들과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에 대해서 풍족한 생수의 근원을 어떤 것도 담지 못할 터진 웅덩이와 바꾸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비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무시했음을 저장하지 못한 터진 웅덩이를 판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 비유는 생명도 없고 생명을 줄 수도 없는 우상을 만들고 섬긴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의 유다가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율법 관계를 거부함으로써 언약 자체를 파기한 사실에 대한 신랄한 지적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반대로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는 일찍이 선지자들에 의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들은 세상적 힘을 의지한 결과 포로가 되었으며, 그들이 거하던 땅은 황무하게 되었고 도움을 요구했던 애굽에 의해 도리어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강탈당한 것처럼 유다 역시 똑같은 운명으로 고통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동맹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맹들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예레미야는 유다에게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에 대해, 즉 그것이 얼마나 악하고 비통한 것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보고 주님께 돌아올 수 있다면 그 고통은 값진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역시 우리가 회심하던 날을 회상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계속해서 자라나지 않고 있다면 똑같은 위험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죄악의 길로 나아갈 때는 채찍을 들 수밖에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찢으시면 건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죄악과 다투시고 싸우시는 하나님의 발걸음, 그것을 멈추게 하는 첩경은 믿음과 의의 흉배를 붙이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무익한 것을 따르며 주님을 멀리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디서 삶의 만족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물질에 중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적 성공을 위해 한 때 열심히 한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도 있었지만 회복을 위해 바른길을 찾았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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