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꽈벼기 2018. 10. 6. 08:18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예레미야 21:1~14)

 

1~7, 바벨론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의 존망의 갈림길에 처한 시드기야 왕은 이제 자신이 핍박했던 예레미야에게 말기야의 아들 바스홀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기도를 요청합니다. 여기서 왕의 방백 중의 한 사람인 바스홀은 나중에 예레미야를 반역죄로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한 사람이며, 스바냐는 서열에 있어서 대제사장 스라야 다음의 두 번째 제사장으로서 여호야다의 뒤를 계승한 유다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과거에 히스기야 왕 당시에 침공한 앗수르를 물리쳐 주신 것과 같이 이번에도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물리쳐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시드기야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결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려는 인간적인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판을 선언하게 됩니다.

 

시드기야의 구원 요청에 대해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의해 참담한 재앙이 임할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가지고 있는 전쟁 무기들로부터 등을 돌리시고 성 밖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모으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유다의 구원자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심판자입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리저리 숨는 사람들은 무서운 재앙으로 죽게 되며, 살아남은 자들은 열병으로 인하여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멸될 뿐만 아니라 유다의 왕권도 역시 소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고의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그 결과 성전의 존재 자체로 거짓 희망을 품고 있었던 시드기야는 더는 어떠한 긍휼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아의 파멸을 간접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유다 왕권의 패망이 임박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패역한 유다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허망하며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지를 알게 됩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애굽을 의지하려 했을 때 엄청난 파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8~14, 유다 백성들은 다가온 심판의 현실을 겸손히 받아들이도록 요구받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예루살렘 성안에 남아 있기를 선택한 자들에게는 처절한 죽음이 주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항복하는 자들은 생명이 보존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예루살렘에 해를 입히시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돌파구이며, 언약 백성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는 반항하지 말고 묵묵히 순복하여야만 진정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11~14절에서 유다의 죄에 대해 왕족을 중심으로 진술합니다. 사실 유다의 왕이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약속의 땅에 공의를 실현해야 할 대리 사역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에 등극했을 때 하나님께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을 달리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언약 백성에게 있어서 공의를 실천하고 남을 압제하지 않는 것을 공평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질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표시로서의 중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패망 시기의 유다 왕들은 정의를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여 유다를 멸망시킬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그 성을 안전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자만하면서 누가 우리의 피난처에 쳐들어올 자가 있겠는가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불복종의 죄와 더불어 교만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아 철저한 파멸을 맛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결과의 일차적인 책임이 기름 부음을 받은 왕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요구하면서도 내면으로는 여전히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자만이 얼마나 심각한 진계를 초래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길은 일시적으로 고난을 가져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궁극적으로 선과 진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길은 본문의 이스라엘인들에게서 보듯, 당면한 문제 해결의 방편인 것 같으나 마침내 더 큰 고통과 패배를 안겨줄 따름입니다. 이를 빗대어 잠언 16:25절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겸손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할 때 주님의 생명의 길이 밝히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며 모든 것에 우선하여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