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시편 77:1~20)②[환난 중에 받는 위로]

꽈벼기 2022. 2. 24. 08:43

[환난 중에 받는 위로]

(시편 77:1~20)

 

1~3, 아삽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마치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신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을 향해 위기로부터 구원을 간구합니다. 영혼은 불안과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어 참된 평안함이 상실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자포자기 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시인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부닥쳐 과거에 언제나 백성의 울부짖음에 주목하셨던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합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하기 이전에는 절대 기도를 쉬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펼친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시인의 이러한 기도에도 그의 심령은 안위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하셨던 적극적인 개입을 지금은 취소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느낍니다. 더욱 불만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4~9, 아삽은 영적 진리에 관해 진지하게 묵상합니다. 여기에서 마치 하나님을 의심하는 듯한 아삽의 물음들은 사실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시인 아삽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이 왜 발생하였으며,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가에 대하여 고심하며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시인의 의문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낙심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견고히 가져보려는 동기에서 드러난 탄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기초하여 제기된 질문입니다. 무엇이나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선한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고난받는 자에게 위로를 베푸신다는 것을 잊으셨는가 하며, 분명히 그렇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질문하고 있습니다.

 

10~15, 여기서 자기 스스로 새로운 위로와 평안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10절에서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한 사실은 바로 자신의 비관적인 태도를 자책하는 신앙의 태도를 바로 보여줍니다. 그는 비관하기는커녕 오히려 여호와의 옛적 세월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부여된 고통이 한정된 것이며, 영원히 지속하여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과거에 드러난 하나님의 기이한 일과 능력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과거 하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그것을 절감합니다. 하나님의 는 어그러짐이 없고, 오직 정의롭고 바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요셉에게 베푸신 구원을 상기시킵니다. 여기서 야곱과 요셉의 자손이란 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6~20,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등은 홍해의 물을 인격적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개입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이 애굽에 심판을 가하신 사실과 그의 백성을 구원하심을 표현하면서 다소 과장법적인 표현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확실한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외형상으로는 모세와 아론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았으나 참 인도자는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양 떼로 서술한 것도, 그들은 인도자 없이 올바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여정이란 시련의 연속인 것이지만 그러나 스스로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련을 겪으면 즉시 먼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님의 섭리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신실 성에 굳게 의지하여 그 시련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명히 확인하면 할수록, 전제되지 않은 미래는 물론 지금의 암담한 상황도 힘 있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깊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선명히 만나 뵙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