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요한복음 13:1~17)③[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꽈벼기 2022. 2. 16. 08:2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17)

 

1.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양이 생각납니다. 유월절 희생양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는 제물이었습니다. 영원하신 섭리와 정해진 그때를 따라, 행동하심으로 구약의 예언대로 그때 정확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사랑하는 무한성이 없이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의 사랑입니다.

 

2. 가룟 유다의 영적 상태는 마귀가 들어 있는 마음입니다. 공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 약삭빠르게 이해 타산적으로 계산한 결과 사단의 영원한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보상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대가가 되었습니다.

 

3. 유월절 만찬 저녁 식사인 것 같습니다. 모든 권세의 소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은 가룟 유다와는 달랐습니다.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4-5절 예수의 행위 속에는 죽음에 대한 암시가 깃들어 있습니다. 누가 큰 자인가 다투는 동안에 예수님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했습니다. 섬김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나아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신 속제 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6-11절 베드로가 예수의 세족 행위를 거부하게끔 한 베드로의 경외하는 감정은 이해가 됩니다. ‘이후에는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 후를 가리킬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도 예수의 이 발 씻음의 행위가 단순히 겸손에 대한 교훈만이 아니라 구속 행위에 대한 예시였음을 성령께서 오신 후에 깨달았습니다.

 

예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는 결과를 드러냅니다. 그렇게 되면 상관이 없는 관계가 됩니다. 예수의 말씀에 마음이 찔려 발뿐이 아닌 온몸을 씻어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말씀에 곡해한 베드로는 발 씻음을 통한 예수의 사랑과 섬김과 겸손, 궁극적으로는 구속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는 단지 발 씻을 일 곧 매일의 삶 속에서 범하는 죄악들을 회개하고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다는 깨끗하지 않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만이 그 황금시간에 예수를 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내 회개하지 아니하고 쉽사리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시는 예수와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영적 무지와 인간적 연약함에서 헤어날 줄 모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들이 예수의 공생애에 있어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으면서도 그러한 추태를 보였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이러한 세속적 야욕을 잘 알고 계셨으므로 스스로 낮추는 본을 보이시고 교훈을 통해 서로 먼저 섬겨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겉옷을 벗고 몸소 수건을 두르시며 보이신 모범은 비단 이 시점에만 행해진 일이 아니라 공생애를 포함한 예수의 전 생애에 있어서 행해진 일입니다. 예수의 모범을 통해 보이신 겸손은 상대적인 차원을 넘어, 전적으로 상대방을 섬기며 희생하는 절대적 차원의 것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의미의 겸손을 가진 자라야 천국 시민에 합당한 자임을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상대방의 쓰러짐으로 자신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겉으로 겸손을 가장하며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태가 우리의 주변에 만연해 있습니다.

 

12. 예수님은 모든 것을 행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섬김을 가르치는 자리에 그 사랑을 배반하는 자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깊은 의미를 줍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자신의 말씀을 몸소 실천해 보이셨으며 제자들이 이 일까지 본받아 실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13. 제자들이 자신을 선생과 주라고 부른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유일하고도 진실 된 참 선생이요, 하늘 아버지의 권능을 부여받은 유일하고도 참된 주임을 확언하는 뜻으로 이 구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의 주권자이신 께 순종하는 자일뿐 아니라 또한 유일하신 선생으로부터 모든 진리를 배우는 자들입니다.

 

14.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교만한 자아와 이기심을 포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로서 종들의 발을 씻겼다면 하물며 제자들 상호 간에는 더더욱 섬김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15-16, 가장 훌륭한 제자 훈련이었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낫습니다. 철저히 본을 보이는 것은 마음 판에 새기기에 딱 입니다. 제자들의 정체가 명확하게 규정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 보냄을 받아 모든 섬김과 높은 자리를 거부하고 스스로 낮아져 다른 사람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제자들 또한 종으로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이것은 진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7, 영적인 복입니다. 섬기는 것이 복이며 주는 것이 복입니다. 내면의 작용에만 머물러 행함이 없고 다만 교훈을 통해 받은 감동에만 사로잡혀 만족을 얻는 데만 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미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배신행위를 내다보시고도 몸소 섬김의 도를 보여 주신 예수의 행위는 자기희생적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대적 차원의 행위였습니다. 연약한 것들을 택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으신 예수는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므로 끝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는 피로써 맺어집니다. 예수의 보혈로 씻김을 받은 자들만이 예수와 연합 할 수 있는 자들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보혈로 씻김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전혀 예수와 무관한 자들로 예수의 지체가 될 수 없으며 더욱이 예수와의 만찬에도 참석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확고히 거 하고 있길 원합니다. 나에게 치유의 손을 내밀어 주시고 겸손과 섬김의 모습이 회복되게 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사랑 안에 확고히 거하는 것일까 돌아봅니다. 제자들을 위해 종이 되신 예수님의 섬김을 보면서 말입니다. 언제나 치유의 손을 내밀어 주셔서 겸손과 섬김의 모습이 회복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