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세기 29:1~20)②
1~14절,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과의 회우 전까지만 해도 지옥 같은 절망에 사로잡혔었으나 벧엘 사건 이후 목적지 하란에 이르는 여정은 마치 천국에로의 활기찬 여행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신 의식은 낯선 땅 하란에 도착한 지경까지도 계속 유지되어 이방인인 그가 마치 하란 땅의 중인인양 우물 관리를 임의대로 집행하는 등 자신만만하게 처신하였습니다.
한편 그가 라헬과 삼촌 라반을 만난 장면은 약 1세기 전, 이삭의 신붓감을 위해 이곳에 보내졌던 종 엘리에셀의 경험과 너무 흡사합니다. 약 100년의 시차를 둔 양 사건을 하나님께서 백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도하고 계시는가를 보여 주는 산 증거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사고와 발걸음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성도의 삶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진행됩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그 삶이 항상 유쾌하며 감사가 넘칩니다.
사랑에 기초한 봉사는 즐겁고 유익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의 봉사는 무거운 짐이며 고역일 것입니다. 유랑생활을 마감한 야곱 앞에는 새로운 일터와 그가 흠모할 만한 여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야곱이 생소한 환경과 고된 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고통스럽고 불안한 환경을 초월하는 힘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에 대한 헌신을 결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 앞에 놓인 십자가를 즐겨질 수 있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올바른 사랑의 마음이 식어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식을 때, 모든 문제는 발생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던 형제의 흠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라헬을 사랑했을 때 야곱은 불합리를 무릅쓰고 세월을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봉사했듯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아나가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뜨거운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의 걸음을 지켜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두려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계속 의뢰하며 그분께서는 평안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의 전 생애를 인도하실 것이니깐 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순종하고 살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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