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창세기 27:30~40)②
야곱 모자의 기만과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 언약 후손을 잇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얻은 것은 그 자신의 노력이나 술수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대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간섭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약속은 성취되었으나 인간이 저지른 실수와 거짓과 경솔함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인간들의 허물이 빚어낸 뼈저린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들과 아내에게 동시에 속은 원통함과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절망에 휩싸인 큰아들 에서를 앞에 둔 아버지 이삭의 허탈함과 자신에게 돌아올 여분의 축복이 없는가 하고 절규하며 끝내 동생에 대한 지독한 증오를 품는 에서의 초라함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아픔은 인간의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치 않고 인간의 관습과 자신의 결정을 더욱 귀히 여긴 이삭에게는 배신과 후회를,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를 무시한 에서에게는 장자권 박탈이라는 불행을 유업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서의 간청으로 주어진 여분의 축복은 여호와의 이름과 무관한 것으로 에서를 유익하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에서를 저주한 내용이었습니다.
에서는 물이 없는 척박한 땅에 거주하게 되고, 이웃 나라나 지나는 대상들을 약탈하여 생활을 꾸려가며, 에돔이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있게 되고, 에돔이 이스라엘 속박에서 벗어날 때도 있었지만 완전한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은 에돔의 순간적인 해방이나 우위를 뜻합니다.
축복과 저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기원 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빠져버린 축복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이 아니라 화이며 저주였습니다.
◆망령된 자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것과 세상의 것,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을 분간 못 하는 어리석은 행실이 바로 망령된 행실이요, 그렇게 사는 자가 바로 망령된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안을 밝히 떠 진정 무엇이 나에게 소중한 가를 깨닫는 귀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는 언제나 파괴하는 것이지 결코 행복을 초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내 마음의 원한을 용서받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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