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창세기 26:12~33) ②
12~16절 가뭄으로 인해 애굽행을 결심했던 이삭에게 하나님께서는 조건부 축복을 제시하시고 가나안 땅에서 떠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에 이삭은 블레셋 땅에 안주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 결과 주위가 다 놀랄 만큼의 풍성한 소출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의 영농법이 독특해서라기보다 그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습니다. 그의 번영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듯이 원주민들이 나그네에 불과한 이삭의 번영을 못마땅하게 여겨 족장 시대 당시 제2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우물을 강제로 메우는 횡포를 부렸습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 이 같은 행동은 일종의 선전포고이자 묵시적인 추방 명령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약속받았던 이삭은 전쟁을 통해 그 땅을 사수하느냐 아니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냐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17~33절 결국 이삭은 평화를 선택하였고 거듭되는 우물 탈취에도 대항치 않고 자신의 거처를 꾸준히 찾아 나섰습니다. 이는 그가 비굴하거나 힘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며 마침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으며, 미움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는 사랑뿐임을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끝내 핍박자의 무리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평화를 맺자고 이삭에게 제의해 옴으로써 결론이 났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신앙의 승리이며 사랑의 무한한 감화력을 보여 주는 성숙한 성도의 처세술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이 세상 삶을 통해 각양의 박해와 시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의 필연적인 삶의 양태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비굴하게 세상과 타협하거나 아니면 세상과 맞서서 항상 불화를 조성하기보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소망 중에 인내함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향나무가 상처를 입을 때 비로소 품고 있던 진한 향기를 진동하듯이, 그 같은 아픔을 통해 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가 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 세상은 온통 사납고 포악스러운 자들만이 설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침에 잠깐 있다가 안개와 같이 사라집니다. 실상은 온유한 자들이 번성하고 화평하게 되며,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온유한 자의 표상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진리의 교훈입니다. 궁극적 승리는 온유한 자의 것이라는 이 성경적 진리를 믿기를 원합니다.
●의를 갈망하며 그것을 얻을 때까지 노력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만족과 공급을 갈망할 수 있도록 사모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이웃이 내 주위에 있으며 그들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고 섬기려고 노력을 합니다. 나를 인도하셔서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화평케 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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