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꽈벼기 2019. 3. 27. 08:04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마태복음 21:12~22)

 

12~22절은 성전 청결과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기사는 유대교의 타락과 형식주의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언급됩니다.

 

메시아로서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다음 날 유대교의 부패상과 형식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섬으로써 추후의 죄악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엄정한 공의의 시행자다운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한편 본문에 제시되는 성전 청결 작업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 두 번째의 일로서 첫 번 청결 작업은 공생애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쨌든 이 청결 작업으로 인해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대적들의 음모가 더욱 가속화되었음을 물론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의 장사치들을 내어 쫓는 직접적 행동을 보이신 후 곧이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상징적 행동으로써 유대교의 뿌리 깊은 타락상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 기사에 들어가기 전에 당시 성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적 크지 않은 건물로 세워진 성전 본관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고 성전 본관 밑으로 층층이 뜰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중 맨 밑의 낮은 뜰이 이방인의 뜰이었으며 거기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위는 미문으로 출입하는 유대 여인의 뜰이었고 그 위가 이스라엘의 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뜰은 백성들이 성전 예식을 위해 모였던 곳으로 20명에 의해 열고 닫히는 거대한 청동 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는 제사장의 뜰이 위치하였습니다.

 

본문의 성전 청결 사건은 이방인의 뜰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거기는 언제나 분주했지만, 유월절 때에는 훨씬 심했습니다. 유대인 장년은 엄청난 성전 운영비를 위해 매년 한 번씩 반 세겔씩의 성전 세를 부담하였습니다. 성전 세는 대개 유월절 한 달 전에 전국적으로 설치된 납세 소에서 거둬들여 졌으며 그때 내지 못한 자들은 유월절 직전에 성전에 찾아가서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성전 세는 특정한 은돈으로 바꾸어 납부되었는데 소위 돈 바꾸는 자들은 엄청난 환전료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큰 문젯거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방문하는 자들은 대개 희생 제사에 쓰일 짐승은 성전 안에서 검인 찍힌 것이어야 흠 없고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검인 찍힌 희생 제물은 무려 10배 이상 비싼 값으로 매매되었고 그 매매로 인한 부당 이득금은 대부분 대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당시 대제사장은 가난한 순례자들의 고생을 하여 얻은 이익을 착취하였고 성전은 바로 그러한 타락의 온상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단지 기도하는 장소가 엉뚱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신 행동이 과격하게 예수님은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저주하신 행동은 좀 지나치게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과 장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세상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이 가려지는 일들을 보게 될 때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지만, 눈을 찌푸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확신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