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1~11)②
1~11절은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은 예루살렘 입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지신의 생애뿐만 아니라 구속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슥9:9에 예언된 메시아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이심을 만민에게 선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은 특별히 승리의 입성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는 1주일 후에 있을 예수님의 부활 승리를 예견한다는 점에서도 더욱더 그러합니다.
사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시작될 즈음에 베다니에 이르러 그곳에서 안식일을 보내시고 다음 날 벳바게로 나와서 나귀를 데려오도록 두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 평행 구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제자들이 나귀를 데려오는 장면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수많은 백성은 겉옷을 길 위에 펴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을 환영하였으며 앞뒤에서 행렬을 따르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새우실 거라는 기대로 말미암아 잔뜩 흥분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적들을 물리치기는커녕 초라한 모습으로 아무런 반항도 없이 순순히 사로잡히자 이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세워졌을 때는 그들은 한목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칭찬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가 뚜렷해집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입성하면서 나귀 새끼를 탔던 주님은 절대로 일시적인 낭만적 기분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실로 그런 일에는 그분의 위대한 겸손의 정신과 무장해제 정신, 그리고 무저항 정신이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적들이 삼엄하게 무장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이 같은 정신을 배워 누구도 적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
●세상 권위를 세우려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처럼 겸손하게 행동하며 주 안에서 영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초라한 모습으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를 원하며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겸손한 모습을 묵상하고 본받는 생활을 할 수 있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0) | 2019.03.28 |
---|---|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0) | 2019.03.27 |
[누구든지 크고자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0) | 2019.03.25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0) | 2019.03.24 |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0) | 2019.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