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꽈벼기 2019. 3. 18. 07:09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 13:15~31)

 

15~22, 이미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율법의 철저한 적용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타락하였음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안식일의 회복에 대해 느헤미야 자신이 사역한 것을 언급한 곳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범한 것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15, 16, 안식일의 회복을 위해 엄하게 꾸짖은 사실을 언급한 17, 18, 느헤미야 자신이 취한 조치가 19~22a, 그의 기도 내용을 서술한 22b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서 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안식일의 회복을 위해 자신이 행한 일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단절레위인들의 분깃 규정 강조안식일 회복등의 순으로 본 장의 내용을 전개해 본문에서는 당시 종교적 차원에서의 개혁이 필요하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식일 성수 기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소산을 적게 만드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희생 제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라도 안식일을 지켜 이방족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중근동 지역 전체가 페르시아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통일됨으로써, 민족들 간의 교류와 접촉이 매우 빈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그리고 혈통적 순수성의 보존을 위하여 더욱더 열심히 안식일을 지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하루를 쉬면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셨던 큰 은혜를 기념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안식일을 지켜야만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느헤미야가 취한 방법 중 첫째는 백성들의 대표들을 말씀에 근거하여 책망하는 17, 18. 둘째로, 그는 장사꾼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문을 지키게 하며 또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물론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법을 범한 이방인들을 벌할 권한을 가진 21, 그러나 안식일 준수는 종교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형벌을 가하기보다는 엄중한 경고에 그쳤던 듯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될 수 있기를 소원한 22b절입니다.

 

23~31, 느헤미야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던 이방인들과의 잡혼 문제를 강력히 대처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유다 민족의 순수성과 종교적 신앙심을 위해 노력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통혼을 통해 드러난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 23, 24, 문제 해결을 위해 대처한 느헤미야의 꾸짖음을 기술한 25~27, 대제사장의 자손까지도 통혼한 심각한 상황에서 엄격히 그 사건을 처리한 사실을 기록한 28~3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잡혼이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지도층에서까지 행해질 정도로 유다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일반 백성의 문제대제사장의 문제라는 순으로 기록합니다. 이처럼 또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방인과 잡혼에 대해 느헤미야가 매우 강력히, 그리고 엄격히 대처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암시하기 위해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는 25절에 맹세의 방법으로, 대제사장에게는 28절에 나타난 파면의 방법으로 처리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정략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이라는 비극을 초래한 우상숭배가 있었으며 북이스라엘 왕 아합이 시돈 왕 옛 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함으로 인하여 북 왕국 전역에 우상이 만연했던 경우도 있었고, 이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남 유다의 왕 여호람과 결혼함으로 유다 왕국의 존립이 한때 존폐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습니다.

 

본 장에서 통혼 사건은 그 이전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습니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통혼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야기될 우상숭배의 문제는 언급하지 아니합니다. 언어의 문제가 우상숭배 그 이상의 심각성을 갖는다고 보고, 이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인간적인 동정심보다 하나님의 대의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사후, 즉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400여 년간의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할 수밖에 없었던 구약 최후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는 충돌될 수밖에 없으며, 영적 지도자는 인간과의 관계나 사사로운 정분보다는 하나님의 대의명분을 중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한 일을 두고서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마는 그래도 분별없이 날뛰지 않고 전 인격적 힘을 쏟아 책망하고 맹세시키고, 그 범죄의 참혹성까지 실증을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백성의 범죄를 원만히 해결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누구나 본받아야 하겠지만 특히 신자들을 다루는 위치에 서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더욱더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신자들에게서 범죄를 막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일에 율법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 나 중심의 무절제한 생활을 나름대로 합리화하는 일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안식일을 잘 지켜 주의 법에 정의를 지킬 수 있길 원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전하게 남아 있기 위해 과격한 결단도 필요하며,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순종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