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꽈벼기 2019. 2. 23. 16:34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마태복음 14:13~21)

 

13~21절의 말씀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이적 기사입니다. 예수님을 좇아온 무리의 대부분은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의 사랑을 지니지 못한 채 단순한 호기심이나 저급한 동기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지만 배고픔에 지쳐있는 무리를 결코 외면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는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긍휼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리의 바구니에 음식이 가득 차도록 직접 채우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할 새로운 공동체라고 하는 양 떼의 목자들이 되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 목자들은 자기의 힘으로는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낼 수 없으며, 양들을 먹이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은 양 떼의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다는 사실 또한 시사되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이라고 하는 일관된 문맥의 흐름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음과 마찬가지로, 본문 역시 메시아의 자기계시라고 하는 본서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큰 주제에 연관된 내용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무엇을 입고 먹을까 하는 문제에 모든 관심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께 의탁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구하면,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따라 모든 것을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한 마디로 창조주의 권능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무리는 예수님을 모세나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 정도로 여기고서 어찌하든 육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몰두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예수님의 관심은 육신의 배고픔보다는 그 무리의 영혼의 굶주림에 있었습니다.

 

빈들에 모인 무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점점 멸망의 길로 가까이 나아가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무리에 이 기적을 통해 무엇보다 그들이 영적으로 부요해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자들까지 빵에만 연연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무리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셨을 뿐 아니라 병을 고치시고 떡을 먹이심으로 육체적인 필요도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향해 사랑과 자비를 베푸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제자들의 태도는 아주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사랑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합리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됨, 합리성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적인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