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나는 늙으려고

꽈벼기 2012. 12. 15. 11:46

나는 늙으려고

 

나는 늙으려고 이 세상 끝까지 왔나보다

북두칠성이 물가에 내려와 발을 적시는

호수, 적막하고 고즈넉한 물에 비친 달은

붉게 늙었다 저 괴물 같은 아름다운 달

뒤로 부옇게 흐린 빛은 오로라인가

이 궁벽한 모텔에서 아직 다 하지 않은 참회의

말 생각하며 한밤을 깨어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어디론가 사라질

삶,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지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아주 흐리게 보이는

소리 사이로 눈발 같은 미련 섞여 있어

눈물겹다 세상의 길이란 길

끝에서는, 삭은 두엄 냄새 같은, 편안한

잠 만날 줄 알았건만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저 기막힌 그리움

벗어 놓는단 말인가 부끄러운 나이 잊고

한밤을 ㄴ여기서 늙어 머리 하옇게 세도록

바라본다 허망한 이승의 목숨 하나가

몸 반쯤 가린 바람 사이로 흔들리는 것을

                               - 조 창 환-

 

세모에 가깝다. 하나의 나이테를 겹쳐 두르는 쓸쓸함이 내 뒤의 긴 그림자를 더욱 무겁게 한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헛것으로 살았단 말인가?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간절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헛것으로 산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문다는 사실만으로도 '북두칠성이 내려와 호수에 발을 적시는' 풍경 앞에 서 있게 하는데 하물며 일생의 저물녘에서야 말해 무엇하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모습은 '징거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같다. 그러나 그 '징그러운' 은 실은 '그리운'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운 얼국들을 어떻게 뿌리칠 것인가. 노경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를 삼키는 세모다.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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