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꽈벼기 2016. 1. 22. 07:32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누가복음 7:1~17)

 

1~10, 예수의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까지 미쳤음을 바로 보여줍니다. 이방 전도에 있어 획기적인 의의를 지닌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을 연상합니다. 특히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는 점에서 복음의 우주적 성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쓰인 누가복음의 특징과도 잘 부합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비교하여 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사실은 왜곡된 영적 자만에 빠진 유대인들이 도리어 복음을 거역함으로써 복음이 급속하게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백부장이 예수를 집에 모시는 일조차 감동치 못하겠노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의 신적 권능과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군대의 상하 관계에 몸이 밴 백부장은 신적 권위를 지닌 예수와 자신이 감히 마주 대할 수 없을 정도의 관계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고 겸손하게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종의 질병이 완치되리라고 믿었던 이 백부장이야말로 예수의 신적 권능에 대한 확신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개인 등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지도자요 율법의 선생으로 자처했던 자들은 오히려 예수를 대적하고 핍박했던 반면에, 이방인인 이 백부장이 예수의 신분에 대해 탁월한 영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본문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체험하는 크고 작은 여러 축복과 은혜들은 일차적으로 예수의 주권적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그릇 곧 우리의 믿음이 필히 요청됩니다.

 

11~17, 신구약 성경에는 죽은 이를 되살려낸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몇몇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친히 일어나라는 한 마디 명령으로써 죽은 청년을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친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쥔 분으로서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강력히 뜻합니다.

 

한편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자들은 예수를 엘리아나 엘리사 같은 큰 선지자 중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통해 이제 다시금 하나님이 그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셨음을 깨닫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생명의 주가 되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능력 그 자체시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의 사건은, 예수께서 장차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실 것임은 물론이요, 마지막 날에 성도들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을 예표해줍니다. 인류의 구속과 만물회복이라고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수는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겪으십니다.

 

나인 성으로 들어가는 성문 근처에서 예수는 한 장례행렬과 만나셨습니다. 관 속에 누운 시신이 과부의 외동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의 동정과 안타까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잃은 과부에 대한 깊은 연민의 발로에서 죽은 청년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주님의 크신 긍휼을 보여 주는 단적인 실례라 하겠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과부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그리고 구제의 대상으로서 언급되고 있는바, 예수께서도 외아들을 잃은 과부의 슬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소외층에 대한 누가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실천하는 믿음이요 겸손한 믿음이며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되리라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은 그 믿음대로 놀라운 기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놀라운 그 무엇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주께서는 복되다고 하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굳게 믿고 겸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고 살아가길 원하며 남보다 나를 생각하는 교만을 용서받길 원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사망을 이기신 주님을 찬양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