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꽈벼기 2016. 1. 23. 07:07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누가복음 7:18~35)

 

18~23, ‘예수는 메시아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나는 누구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대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는 구약의 예언과 일치하는 바 그 자신이 나타낸 행동을 보고 들은 대로 알리라고 말씀하셨고 이와 더불어 그 자신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고 자신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 만일 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한다면, 너희는 넘어질 것이다라는 엄숙한 경고의 말씀이 됩니다.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왕의 표징이 될 만한 의복이나 왕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단지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초라한 랍비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와 그의 말씀이 하나의 거침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예수와 그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24~28, 앞 단락에서 예수는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께서 요한에 대해 높이 평가하신 것은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요한이 헤롯의 감옥에 갇힌 사실과 그가 자기 제자들을 통해 예수께 질문을 해왔다는 사실 자체는 세례 요한을 위대한 선지자로 받아들었던 당시의 무리에게 그의 권위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할 만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무리 앞에서 요한을 변호함으로써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부드러운 옷을 입은 궁중의 시종과 같은 인물도 아니라, 어떤 선지자보다도 위대한 선지자이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큰 자라고 정당한 논리로 그릇된 주장을 깨뜨리고 진리를 밝히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는 상징적인 말씀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이 받은 은혜와 그가 쌓은 업적은 누구에 비겨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구약의 한계에 속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 신분을 직접 누리는 신약의 성도들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29~35, 세례 요한에 대해 가벼운 평가를 하지 않도록 하신 예수께서는 사악한 세대를 책망하셨습니다. 이러한 책망은 다소 풍자적이면서도 유머가 깃들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첫째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착안한 비유를 통해 복음에 대한 이 세대의 무감각성과 교만함을 책망하셨고 둘째로 세례요한과 예수에 대한 그들의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自己)주장(主張)의 조건(條件)에 맞도록 하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변덕스러움을 꾸짖으셨습니다.

 

세상의 영화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라는 대답에 자유스러울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를 찾아 광야를 나섰던 유대인들에게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성도와 교회도 그처럼 세상의 허영된 꿈을 안고 모여드는 군중들 앞에서 그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왕궁이 아니요, 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가 참된 자아를 발전케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심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를 원합니다. 버려야 할 교만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님을 위한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 오셔서 겸손으로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길 바라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