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누가복음6:12~26)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시는 내용이 수록됩니다. 본문의 첫 구절이 예수의 철야기도 장면으로 시작된다는 점이 각별한 주의를 끕니다. 날이 갈수록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충돌 횟수나 충돌의 강도가 높아가는 긴박한 와중에서 그리고 향후 교회를 이끌고 나가야 할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을 사도들을 선정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서 예수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갈릴리 사역의 초기부터 이미 제자들을 세우기 시작하셨으므로 본문의 경우는 이미 택함을 받은 제자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예수와 동행하며 신앙의 산교육을 받은 후 마침내 파송되기에 이릅니다.
17~19절은 본 설교의 도입부로서 예수의 이적 치유 기사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여기서 강조된 치유의 ‘권능’은 본문 설교의 권위를 한층 드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과 이론에만 능한 웅변가가 아니라 가르침들을 능히 뒷받침할 만한 실제적 권능을 행해 보이시는 분임을 이 도입부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20~26절은 본 설교의 서론 역할을 하며, 복 있는 자와 화 받을 자를 소개합니다. 산상 수훈은 소위 팔복으로 시작되는 데 비해 평지 수훈의 서론 부문에서는 축복받을 자와 저주받을 자를 직접 대조함으로써 진리와 거짓, 선과 악, 그리고 믿음과 불신 등에 관한 양자택일의 의미를 강화합니다.
이처럼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포하는 메시지는 구약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예컨대, 시편 1편은 전체 시편의 서론 격으로서 의인의 축복과 악인의 저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와 현재 주리고 우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 받는 자 등이 오히려 축복받는 자라고 하는 역설적 교훈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누가의 각별한 관심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축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축복관은 다른 어떤 철학이나 종교에서 제시하는 축복관보다 숭고하며 영적이고 또한 혁신적이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몇몇 정치가나 이름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오늘의 역사를 이루기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열두 사도의 택하심과 오순절 교회의 흥왕을 말하고 있지만, 사도들의 위대한 행적은 다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에 관련한 것이지 역사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겸손히 예수님의 삶을 배우기 원합니다. 일시적인 복과 영적인 복 중에서 영적인 복을 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기를 원하며 열등감에 빠진 패배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늘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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