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예레미야 29:15~32)[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꽈벼기 2024. 7. 9. 22:11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예레미야 29:15~32)

 

15~19,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메시지의 핵심이 성전 중심의 굳어진 사상과 다르고, 더구나 바벨론에 있는 거짓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선민의식에 걸맞게 예루살렘의 안전과 포로 중에 있는 자들의 귀환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일체의 낙관적인 견해를 무시하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은 칼, 기근, 염병 등으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무화과 두 광주리에 대한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마치 밖에 버려져 있는 썩은 무화과와 같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듣지 않은 유다는 B. C. 586년 바벨론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성전 기물까지 모두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궁극적으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20~32, 20~23절은 거짓 선지자의 실상을 도입하고 아합과 시드기야를 예를 들어 말하며, 비참한 종말을 보입니다. 24~29절은 스마야 선지자의 예레미야 모함을 이야기하며, 30~32절은 거짓 선지자의 실상 및 종말을 나타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혼돈 하게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냐처럼 유다의 평안과 바벨론 포로의 조속한 귀향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에 동조하는 백성들이 철저히 저주를 받게 될 것을 말하면서 그 정표로 두 선지자를 바벨론 왕에게 넘겨주어 반란 선동죄로 불에 태워처형되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키는 행위는 가장 큰 죄악에 속합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어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는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을 좇도록 유도하는 원흉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영적 지도자들을 유혹하여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하도록 유도합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는 당시 성전을 책임 맡은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에게 서신을 보내어 마치 예언자처럼 행동하는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워 칼을 메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을 증거로 삼아 예레미야는 반드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예레미냐의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스마야의 모함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두 번째 편지를 보내어 하나님의 예언에 반역한 스마야와 가족들이 모두 벌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스마야의 악한 시도는 실패했고 도리어 멸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 의해 방해받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추구해야 할 자세임을 알게 됩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간적 욕구와 판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를 믿으며 말씀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며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위기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자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잃고 살아가지 않는지 뒤돌아봅니다. 죄를 깨닫고 하시고 두려움과 죄의 고통 가운데서 온전히 건져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