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가복음 9:14~29)②[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꽈벼기 2024. 3. 6. 19:03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9:14~29)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계속 머무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은 변화산상에 계시면서도 자신이 꼭 완수해야 할 고난받는 종의 사명과 죄인들을 긍휼히 여겨서 그들 영육간의 궁핍함을 채우고자 하는 봉사의 삶을 절대 잊지 않으셨습니다.

 

변화산의 위와 아래의 대조적인 두 광경은 두 도성을 연상시킵니다. 성도들이 위로는 영화롭고 이상적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비전을 바라보지만, 아래로는 온갖 부조리와 비극이 더불어 존재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이 두 세계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야 말로 신앙생활의 큰 관건 중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인간 상호 간의 모든 수평적 관계를 건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 충실해야 함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내밀하고도 깊이 있는 영과의 교제 시간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현실을 도외시하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에만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 바른 신앙 자세가 아닙니다. 묵상에서 실제적 활동으로, 서재에서 구체적 삶의 터로, 밀실에서 거리로 그리고 주님과의 내밀한 영적 교제에서 사단과의 전투로 나아가는 신앙이야말로 올바르고 생명력 있는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예수님의 권능과 믿음이 없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제자들의 무기력함이 뚜렷이 대조를 이룹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수없이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그 크신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시 예수님과 떨어져 있는 사이에 믿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하는 이 긴박한 시점에 이르러, 예수님의 제자 훈련이 집중적으로 강화되어 갔음은 물론이거니와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불신에 대한 예수의 안타까움과 책망도 더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불신으로 은혜의 권능을 상실해 버린 제자들의 이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은 고통스러운 역경이나 달콤한 유혹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성도들을 은혜의 보좌로부터 멀리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늘 기도에 힘쓰고 말씀과 성령의 인도 하심에 따르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만 저러한 사단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영혼의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멸망을 방관하는 자는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책임을 반드시 추궁 받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귀신들과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아이에게서 귀신을 몰아내고 바로 고치셨습니다. 모두가 실패한 절망적 현실에서 그 같은 놀라운 이적을 행사할 수 있었던 힘은 믿음의 힘이었고, 권위 있는 말씀의 힘이었으며, 그와 더불어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힘들이 예수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과 기도만 하면,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과 그 말씀의 능력만 덧입으면 얼마든지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주님께 아이의 치유와 더불어 자기의 불신 또한 고쳐달라고 눈물로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교회를 기대하거나 사람을 바라볼 때는 실망 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주님을 믿는 나의 믿음은 얼마나 확신 가운데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내게 닥치는 문제들을 이겨내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