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요한복음 11:1~16)③[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꽈벼기 2022. 2. 5. 09:28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한복음 11:1~16)

 

나사로의 병과 죽음은 예수의 사역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 나타난 예수의 표적은 이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인 십자가로 나아가는 관문에 해당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무리 앞에 어려움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완성해야 할 필연적인 사역이 본 사역입니다.

 

제자들은 또다시 인간적인 위험에 눈이 멀어 예수의 사명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고 가시려 하나이까? ‘ 분명히 제자들의 상황 판단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다시 유대 지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예수의 사역이 고난으로 향하고 있는 시점에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현재의 안일에 빠져 자신들의 구원을 상실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의 필연성을 빛에 대한 설명으로 재 교훈합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하시고, ‘깨우러 가자라고 표현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육체의 수면 상태로 오해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이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시하면서 다시 한 번 본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이를 살리신 예수의 표적이 제자들의 믿음을 갖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훈을 통해 도마의 고백을 들은 제자들의 믿음은 예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병들었다는 시급한 요청을 들은 예수의 태도는 오히려 여유 있기만 합니다. 소식을 들으신 후에 곧바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2일을 더 머무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셨던 사실에 비춰 볼 때 초조함 없이 오히려 지연하시는 태도는 이상할 정도입니다.

 

예수는 상황이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결정하신 시간에만 사역을 실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사역의 시기는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예상했습니다. 시간상으로도 나사로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베다니를 출발한 직후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에서 예수가 계신 곳까지의 거리가 하루거리임을 볼 때 소식이 오는데 하루, 예수의 2일간의 지체, 예수가 베다니로 가는데 하루, 모두 합쳐서 4일이 걸렸는데, 도착했을 당시 나사로가 이미 죽은 지 4일이 되었다는 것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베다니를 떠난 직후에 나사로가 죽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에게 가기를 주저하셨다기보다 오히려 사랑하는 형제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왜 좀 더 일찍 베다니로 오시지 않으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필요로 하는 때는 그분은 멀리 계시거나 안 계신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절대 떠나지 않으시며,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나는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의뢰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이 내 안에 견고히 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