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사사기 19:11~21)②
날이 저물자 여부스족의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유숙하자는 종의 간청을 뿌리치고 이스라엘 백성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사는 기브아 성읍에까지 힘들게 여행을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무도 그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는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에 대해 특별히 친절을 베풀어야 했음에도 이처럼 냉담했습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극악무도한 지경에 빠져있었습니다. 여부스족이 있는 이방인 지역보다 못했습니다.
한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의 건재는 도덕성의 척도가 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입니다. 그런데도 기브아 사람들은 이 레위인 일행을 냉대하므로 그들 도덕성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윤리의 부재가 이방인 여부스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인 기브아 사람들에 의해 드러났음은 당 시대 타락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렵게 기브아에 도착하여 유숙지를 얻지 못하고 있던 레위인과 그 일행은 우연히 같은 고향의 노인을 만나 그의 집으로 인도됩니다. 레위인을 영접한 노인은 기브아에 살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은 괴팍하고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지역을 거부했고 가나안 사람들과 같이 기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때 한밤중에 거리의 객이 된 레위인들은 한 노인의 집에 유숙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노인이었습니다. 레위인 일행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아마도 과거 신앙생활을 했던 시절을 기억했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성전을 지키는 자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입니다. 노인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율법대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노인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담임 또는 책임지고 맡아보는 것을 뜻합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아는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자신의 짐조차 싫어하는데, 이 노인은 스스로 자청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면서 각박하지 않고 이렇게 서로 정을 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점점 인정이 메말라 가는 것 같은 이때,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여유를 가지고 잘못을 용서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를 실망하게 한 사람에게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인은 세상의 모습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거슬러 진리의 편에 서서 살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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