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역대하 23:16~24:3)[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꽈벼기 2020. 11. 30. 08:34

[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역대하 23:16~24:3)

 

16~21, 남유다를 구함과 더불어 다윗 왕가의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밝힌 여호야다 제사장의 정치적 혁명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가 일으킨 종교적 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입니다. , 일단락에서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처형함으로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거사가 성취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직 미완성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전반에는 아달랴의 영향으로 인해 우상숭배의 풍조가 만연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적인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종교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종교 개혁을 언급하는 본문은 여호야다가 단행한 종교적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16절은 언약 체결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왕과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과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을 지키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서 저자는 이 언약적 사건이 다윗 언약과 같이 새로운 내용이 첨가된 사건이 아니라 백성들 편에서의 언약적 재다짐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약에 성실하였으나 그동안 유다 백성의 불성실로 인하여 언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다윗 왕가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며 언약에 대한 충성을 재다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언약의 재다짐을 통하여 유다 백성들은 종교개혁을 훌륭히 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절은 우상 타파 및 맛단 처형입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였다는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상을 타파하고 바알 제사장을 처형한 것은 종교 개혁의 실천적, 소극적 의지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다 전역에 만연해 있었던 바알 숭배에 일침을 가하게 된 것입니다.

 

18, 19절은 예배와 제사 회복입니다. 바알 숭배 타파가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언약 이행이지만 , 성전의 예배와 제사를 회복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다윗이 정한 반차에 따라 재조직한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언약 이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절은 요아스의 등극입니다. 11절에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워 기름을 부은 것은 혁명 과정 중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이 다 종결된 뒤에야 비로소 요아스는 왕의 보좌에 앉게 되었는데 요아스가 보좌에 앉은 것은 진정한 다윗 언약의 계승이며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반만, 혹은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호야다가 왕의 보좌를 찬탈한 자만 죽이고 하나님의 권리를 빼앗은 자를 처단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왕좌의 영예만을 돌보고 제단의 영예를 돌보지 않았더라면 혁명을 절반밖에 행하지 않은 결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는 정치, 종교 전반에 걸쳐 혁명을 수행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종교 개혁의 결과는 언제나 영적 승리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21절에서 회복한 다윗 언약에 함께 한 백성들이 얼마나 즐거워하였고 평온하였는지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주의 대속 사업을 받아들여 주로부터 오는 참 평안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24:1~3, 요아스의 통치 기록에 관한 서문입니다. 그는 북 왕국 왕 예후 7, 그의 나이 7세 때에 왕위에 올랐으며 40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그의 통치 전반에 대한 평가를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 생전에 선정을 베푼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요아스에 대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이 지대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본문에는 열왕기에 언급된 것, 즉 요아스가 산당을 제하지 않은 사실을 생략한 채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이 두 아내와 결혼하게 한 사실이 중요하게 3절에 부각되어 있어 요아스와 통치 시기 전반기에 제사장 여호야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이 거듭 나타납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사는 동안에는 그의 교훈에 의지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했으나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방백들을 의지함으로써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이로 볼 때 요아스는 항상 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했을 뿐 신앙의 훈련을 통한 자기 성숙을 이루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성도들도 유아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어떠한 유혹과 환란이 온다 할지라도 능히 극복할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으로 하여금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한 사실은 결혼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여호야다는 아달랴의 악행을 통하여 왕실의 잘못된 결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이처럼 결혼 문제에 자신이 직접개입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성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요아스에게는 이러한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배우자를 결정하면서 무분별하게 안목의 정욕을 따라 행하거나 물질적인 잇속을 따라 행하는 많은 젊은이에게 선배의 신앙적 가르침이나 충고가 절실하게 요구됨을 보여줍니다.

 

여호야다는 개혁을 단행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고 철저하게 우상을 척결했으며, 진정한 예배의 회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보다 개혁의 소지를 많이 지니고 있는 오늘의 교회에 대해 크게 경성해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제 고쳤다고 하여 오늘의 잘못은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기에 개혁은 연속성을 지닌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호야자의 개혁은 진정 윤리의 거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의 방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 동기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