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창세기 44:18~34)[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꽈벼기 2020. 9. 14. 08:18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창세기 44:18~34)

 

유다의 대 변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7~26절은 자신들의 현재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상술하는 부분입니다. 27~34절은 베냐민을 노예로 삼기보다 자신을 노예로 삼아 달라고 간청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유다의 이 자기 희생적 탄원은 요셉의 마음을 크게 감동을 줘 마침내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 변론이 주는 교훈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 곧 승리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를 보여 주고 있으며 사랑과 진실에 근거할 때에 진정 힘 있는 말을 전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로 진실은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 됩니다.

 

유다가 요셉에게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라고 말한 것은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고서라도 아버지 야곱의 뜻을 이루고 베냐민을 구해 내겠다는 자기 희생적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은 인간이 뛰어 넘을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요, 양보할 수 없는 존재의 바탕입니다. 이런 면에서 모든 인간이 생명에 집착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칫 남의 생명을 경시하여 경쟁 사회 속에서 남을 이겨야 자신이 존재한다.’는 식의 약욕 강식의 논리로 발전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의 생명을 지키는 것만이 자기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말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 생명을 던지는 자가 가장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수많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터놓으셨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위하고, 고난 겪은 자들을 위해야 합니다. 더욱 연약한 신앙인들을 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중보자의 생을 살기 위해서는 겸손히 마음을 낮추고 진실한 탄원을 통해 해결의 열쇠를 가진 이에게 그들의 사정을 고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중보자의 생을 묵묵히 따라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자꾸만 문제의 본질로 되돌아가게 만드시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대로 죄의 문제를 고백하고 내려놓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일으키시는 변화는 이기심을 희생정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