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창세기 43:16~34)
16~34절, 긴 여행 끝에 다시금 요셉의 집에 다다른 형제들이 요셉의 분부를 받은 청지기로부터 환대를 받지만, 자신들에게는 어떠한 불행이 닥칠지 몰라 두려워하는 장면입니다. 16, 17절은 형제들이 청지기의 인도를 받아 집 안으로 안내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8~22절은 뜻하지 아니한 환대에 당황한 형제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지난날 자루 속에 든 돈 사건에 대하여 변명하는 장면입니다. 23~25절은 청지기가 형제들을 안심시키며 식사 준비를 차려 주는 장면입니다.
형제들의 불안감은 분명 첫 번째 여행 때의 돈 사건과 관련하여 애굽 총리가 간사한 계획을 세워 자신들을 재차 함정에 빠뜨린 후 노예로 삼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임은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로 그들이 지난날 요셉에게 저지른 범죄를 자각하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기 때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요셉 형제들의 두려움은 오늘날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을 생각게 해줍니다. 더욱이 현대인은 어느 시대에 살다간 사람들보다 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세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전쟁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자고 아우성입니다.
물질적 풍요로만 말한다면 오히려 현대 세계는 축복받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핵무기 때문에 혹은 환경오염 때문에 인류의 장래가 암담하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기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뿌리 깊은 죄악에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근원적인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오직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26~34절, 야곱의 열두 아들이 실로 20여 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장면입니다. 26~28절은 형들을 대면한 요셉이 다시금 아비 야곱의 안부를 묻는 장면입니다. 29~30절은 동생 베냐민을 본 요셉이 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급히 안방에 들어가 울고 나오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비록 형제들을 알고 외형상 모든 형제가 한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다른 형제들은 요셉의 정체를 모르며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선 만남이 주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아시며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타내신다 하더라도 인간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구원’이라는 극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만남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요셉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형제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식사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친절에 대해 긴장을 풀지 않았으며 다소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이들이 요셉을 자신의 형제로 알아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흘렀으며 세상살이의 처세술에 짓눌려 진실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인간의 상황을 너무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원하시며, 그들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세상의 헛된 수단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려 하므로 그분의 진정한 성품을 알 수 없으며 너무도 오랜 시간을 사단의 음모에 속아만 왔기 때문에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마음 문이 굳게 닫힌 인간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하나님의 구원 은총이 베풀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능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후일 요셉의 경우에서 보는바 그분이 생명 잔치를 배설하고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낼 때에만이 인간은 구원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일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죄를 품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회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는 남이 모르는 깊은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여, 모든 두려움과 불신을 없애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들을 올바로 깨달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친절은 사람의 마음을 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은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나에게도 정직하고 순결한 마음을 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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