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창세기 42:1~17)[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꽈벼기 2020. 9. 9. 08:25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창세기 42:1~17)

 

1~5, 본 문은 애굽의 기근 현상이 이제 온 세상에 확산되어 마침내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야곱의 집안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그중 1, 2절은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이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리고 3~5절은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여행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야곱과 그 가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문 사실은 그들이 선민의 특권을 점점 잃어버리는 나약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요셉 이야기는 비록 그가 형들의 미음을 사 애굽에 노예로 팔렸지만, 끝내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통해 그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독자적으로 진행되던 두 이야기가 이제 본 단락에서 하나로 합쳐짐으로 커다란 주제 하나를 포착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먼저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멀리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은 혹독한 기근 속에 처한 야곱 일가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은 타인이 전해준 이야기일 뿐, 사실을 확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서로 관망만 하고 있는 아들들에게 명합니다. 2절에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이는 당시 기근 상태가 생사를 언급할 만큼 심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6~8절은 요셉 앞에 이르른 형들이 자신들의 애굽 방문 목적을 밝히고 있으며, 9~17절은 하지만 요셉이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옥에 가두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겉으로 보인 행동은 20년 만에 형제 상봉을 한 자의 행동치고는 너무나 냉혹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 인격을 소유한 자는 자신의 감정을 사사로이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통해 펼치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만약 요셉이 격정의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자신의 신분을 형제들에게 밝힌다면, 형제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했던 잘못 때문에 보복을 당하리라는 공포에 떨거나 아니면 최고 권력자의 형제들이라는 특권을 내세워 애굽 내에서 방자하게 행동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는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 머무르게 하려는 원대한 계획과는 맞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뜻은 어떠한 세력에 의해서도 절대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약속은 사단의 온갖 계교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보장되어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영역 깊숙한 곳까지 세밀히 간섭하셔서 반드시 성취시키십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성도들은 낙심치 않고 소망 중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나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