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창세기 44:1~17)[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꽈벼기 2020. 9. 14. 08:16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창세기 44:1~17)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자신의 요구를 만족하게 한 형들에 대하여, 이제는 요셉이 형제간의 우애를 알아보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은잔 시험을 합니다. 그리고 1~3절은 사전 시험 준비를 다 끝내 놓은 요셉이 형제들의 가나안 귀환을 허용하는 부분이며 4~9절은 얼마 후 요셉이 청지기를 보내어 형제들을 따라 잡은 후 은잔이 없어진 것에 대하여 항의합니다. 10~13절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문제의 은잔이 발견되자 형제들이 방성대곡하며 요셉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아마 가나안을 향한 요셉형제들의 2차 귀향은 볼모로 잡힌 시므온으로 인한 암울한 상태의 1차 귀환과는 달리 모든 형제가 함께 돌아간다는 사실로 대단한 즐거움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같은 기쁨은 커다란 절망 가운데 묻혀 버리고 만 셈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닥쳐오는 불운에 대하여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 이러한 상황을 내린 하나님을 저주하게 됩니다. 실제로 자신의 결백과는 달리 꼼짝없이 누명을 쓰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라고 체념할 인지 아니면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안고 살아간 전형적 인물로 욥을 내세웁니다. 그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하였지만, 결코 그의 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인간의 철학적 산물인 운명을 극복함으로써 신앙의 궁극적 승리를 보여 준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그토록 난관에 빠뜨리려 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은 결코 자신이 당한 과거의 치욕을 갚으려는 철저한 보복 심리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장 형제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마저 억제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자신을 팔아넘긴 형제들이 베냐민을 버리고도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베냐민과 생사를 같이할 정도로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지를 확인할 좋은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셉이 내린 시험은 예수의 사역을 연상케 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모던 인간적 욕구를 억제해야만 했으며, 때가 이를 때까지 메시야 성이 밝혀지기를 그토록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시험을 받아 곤경에 처했음에도 하나로 뭉친 요셉 형제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자신의 모든 욕구를 눈물로 억제한 요셉의 신앙이 합해져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구속사에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은 구속사의 흐름에 새로이 등장한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욕구를 억제하셨음을 기억한다면, 성도들도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신앙으로 견뎌내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형제간의 우애를 시험해 보려 한 요셉을 크게 감동을 준 유다의 감동적인 변론입니다. 한때 가나안 여인과 부도덕한 관계에 빠진 유다가 이처럼 힘찬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야곱 일가의 실질적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여기서 유다의 대변론의 힘은 그 진실에 있었습니다.

 

만일 거짓을 말하며 순간의 상황에 대처하려는 세상의 지혜대로 행동했더라면, 그의 논리는 요셉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 진실한 선민으로 훈련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더 뒤로 미루어졌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명할 생각을 버리고 나의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면서 내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고통스럽지만, 성실히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만 허락하시는 유쾌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끔찍이 사랑하시지만 때로는 그 이유로 우리를 더욱 엄하게 훈련하시기도 하십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든지 배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습니다. 나의 잘 못된 일에 인하여 주위의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