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이사야 29:15~24)
15, 16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악까지도 모두 감찰하십니다. 저자는 인간이 자기의 일을 비밀스럽게 행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에 대하여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과 그 빚은 물건에 대하여 속속들이 다 아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계획 등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어찌 인간이 하나님을 속이고 죄악을 행할 수 있겠는가. 특히 저자는 ‘자기의 계획’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생각의 근원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급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선적인 삶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처럼 살았으나 삶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러한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으시고 정확히 간과하셔서 판단하십니다.
17~21절,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제까지 진행되어오던 예루살렘의 부정적인 묘사와는 달리 이제 택한 백성을 회복시킨다는 긍정적인 언급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실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시적인 패역이나 배도로 인하여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하여 계속해서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 하겠고”라고 묘사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겸손한 자’란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절대적인 차원에서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22~24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예루살렘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난 후, 본문에 이르러서는 언약 백성들의 회복에 대해 최종적으로 묘사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초의 모습과 아울러 하나님의 궁극적이며 불신앙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한 야곱을 언급함으로써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불의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반드시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날, 앗수르의 높음은 낮아지고 유다의 낮음은 높아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 후에 받은 축복을 보면, 고난으로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역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징계하셔서 악한 자들을 끊으셨습니다. 22절에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라는 말씀은 그를 택하시고 불러내시고, 인도하시고, 시험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수치를 당한 자기 백성을 향해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방인들 앞에서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되고, 자손이 하나님을 경의 하며 마음의 완악함을 고치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축복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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