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꽈벼기 2019. 7. 5. 07:3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데살로니가전서 4:1~12)

 

바울은 말세의 대표적인 징조로 나타나는 자유방임 및 쾌락 추구 현상에 대해 경종을 울리면서 성적인 순결을 유지하는 삶을 촉구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생활에 관하여 두 가지를 언급하는데 하나는 1, 2절에서 언급된 일반적인 행위에 관한 것이요, 나머지 한 가지는 성적 순결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월성을 가지지도 않고 더욱이 망설이거나 소심하지도 않고 주께서 그에게 위임한 권위를 가진 자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말합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행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에 대한 일반적인 권고는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더욱더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성화의 삶 속에서 바울은 특별한 국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음란을 버리라는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이 음란을 버리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바울은 을 버리라라는 부정적 형식을 적극적 형식으로 바꾸어 절제 있게 살아라라고 긍정적으로 권면하면서 순결성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즉 순결에 존귀가 첨가된 것이며, 이때 순결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구별된 몸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5절에서 바울은 순결한 삶 혹은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알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우리는 불가불 순리에 어긋나는 욕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바울은 이교도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음란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관하여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삶을 사는 데 기초가 되며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청결한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죄악 때문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그의 죄 때문에 사람 이하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악에 대한 완전한 처분은 마지막 날까지 보류되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떤 형태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시기때문입니다.

 

4절과 7절에서 강조되는 성도가 순결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부르시되거룩하게 하시기 위해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인들을 부르셨다는 사실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떤 종류의 삶으로 부르셨는가 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그들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8절에서 성도가 순결해야 하는 이유는 생활에서 부정한 것은 바로 성령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을 자행하는 사람은 단지 인간의 규율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 어떤 때에 성령의 은사를 주셨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현재 그 조건 속에서 성령을 끊임없이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음란의 죄란 하나님의 은사가 주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사를 경멸하는 행위입니다.

 

9~10절 데살로니가 인들은 비록 새 신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이미 배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르치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권면하는 대신 오히려 이것을 더 많이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11절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바울이 제시한 방법은 먼저 조용히 해야 합니다. 언제나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적으로부터 이탈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갈구하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형제들에게 평안의 원천이 되어 줍니다. 이러한 조용함은 형제를 사랑하는 실제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일에 힘쓸 것을 권합니다. 자기 일에 힘쓰는 것과 형제 사랑과의 관계는 명백히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또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하는 것은 형제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자신의 손으로 일함으로써 모범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이었고 바울은 천막 만드는 노동자였습니다.

 

12절 이것은 자기의 궁핍을 물리침이요, 비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존경받기 위함이요, 궁극의 목표는 우리의 이런 실천으로 인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적 순결은 죄에 대한 심판과 거룩함에로의 부르심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성적 순결은 기본적인 교리를 실생활에 적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음란에 관한 바울의 태도는 그의 환경이나 개인적인 성호 여부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로 신적 계시로부터 비롯되는 논리적 귀결입니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힘은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도덕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하는데 잘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순결한 마음과 믿음을 지켜서 성화의 길로 나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