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꽈벼기 2019. 3. 2. 08:07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느헤미야 1:1~11)

 

B. C. 586년에 파괴한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본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접하는 장면입니다. 즉 본문은 본서 저자인 느헤미야가 뜻하지 않게 훼파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놀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된 역사적 시점과 장소를 언급한 1절과 예루살렘의 소식을 접하게 된 예상치 못한 사건을 기술한 부분 2절과, 당시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 소상히 기록한 3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벽이 훼파되어 있으므로 예루살렘 거민들은 이방인들로부터 계속 약탈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인구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종국에 가서는 간신히 재건한 예루살렘 성전도 노략질을 당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이방인들에 의해 모멸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사태가 악화할 경우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구심적 요소를 상실하게 됨에 따라, 종교적 일체성과 민족적 통일성도 상실할 가능성도 대단히 컸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의 극적인 반응도 바로 이 같은 까닭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보호는 백성들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되 그 백성의 노력에 근거해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키 위한 어떤 구체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팔레스틴으로 귀환과 예루살렘에서의 성벽 재건을 위한 노력이 성공 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받을 교훈이 있다면, 사태의 추이를 예의 분석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줄 아는 지도자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성취를 작정하셨지만, 인간은 그 일의 성취를 위한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4~11, 귀환해야할 원인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한 느헤미야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처한 현실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 귀환의 분명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앞 문단에 이어지는 본문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나타내는 5절과, 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6, 7절과, 신명기적 관점에서 율법을 이해하고 회상한 대목 8, 9절과,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하는 장면 10, 1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의 주요 고위층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성벽 재건 사업을 힘 있게 추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언약 사상에 근거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로 인하여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언약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도는 절대 인본적인 생각에 따른 이기주의적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는 먼저 여호와를 하늘의 하느님으로 칭함으로써 언약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이와 더불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그의 묘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경건하게 경외되어야 할 분인가를 말함과 동시에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의 기도 속에는 자신에 대한 포기와 전적인 헌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기도는 보다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이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위해 느헤미야를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만일 그가 꾀를 부렸다면 그는 수산 궁에 머물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원격 조정하여 성벽 재건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같이 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완성되어야 할 성벽 재건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익히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또한 해야 할 헌신을 먼저 한 뒤 자신에게 필요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철저하게 신명기적입니다. 그는 죄를 먼저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도하는 자신과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같이 여겨 간구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대적하는 자들의 방해에 대해 간구한 본서에 언급된 또 하나의 느헤미야 기도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그의 대표적인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그의 기도는 에스라의 간구와 다니엘의 기도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에 관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만한 기도는 성경 말씀에 근거한, 즉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는 기도이며, 성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지켜야할 일반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먼저 남을 돌보아야 하고, 양떼 돌보는 일을 최우선시해야 하며, 모든 일에 있어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진정 여러 가지로 어지러운 우리 세대에 참으로 필요한 자는 바로 이런 정신이 투철한 지도자입니다.

 

신앙인으로 이처럼 안타깝게 조국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나라가 속히 복음화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로 바로 서게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