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꽈벼기 2019. 1. 20. 07:3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12~25)

 

12~17, 공생애의 출발입니다. 예수의 공생애는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병자와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나아가 천국 복음의 실체인 구속 사역의 성취로 점철된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공생애 개시의 장소입니다. 사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예수의 생애를 관찰하면 예수께서는 이전에 이미 유대에서 가르치셨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의 공생애 출발의 장소를 갈릴리로 잡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의 광야 시험과 본 단락의 공생에 개시까지에는 대략 1년 정도의 준비가 또는 예비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이 바로 예수의 초기 유대 전도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왜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갈릴리 사역 개시를 공생애 개시로 보았을까? 그 이유를 완전히 답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는 성장하고 자라신 그곳 유대 땅에 비하여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이 살고 있으며 종교,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곳에서 공생애 대부분을 보내셨던바 이에 복음서 기자들이 갈릴리를 주 무대로 삼으셨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연히 갈릴리에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굳이 갈릴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시선을 끄는 또 하나는 예수께서 공생애 개시의 제 일성을 주신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공생애 메시지의 핵심으로서 먼저 천국은 예수의 성육신 자체의 목적이요 인간에게 주시려는 구원의 총체였습니다. 한편 회개, 즉 천국의 조건으로서 회개를 요구하신 것은 결국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죄인인 우리들을 향한 예수의 애끊는 권면과 초청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는 예수의 초점은 잘나고 선한 사람을 묶어서 상주고 악인은 벌주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못나고 추한 죄인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겸손한 자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18~22,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갈릴리 출신인 네 제자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제자를 거느리신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적어도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는 이미 이전에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략 1년 후 이번에는 예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그들을 정식으로 제자 삼아 주셨던 것이 바로 이 단락의 기사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한 사건의 의미는 매우 심대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나신 뒤 이 땅에 남아 이루신 복음의 내용, 즉 예수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써 이제 예수를 통하여 우리가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복음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할 자들을 훈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훈련은 그 원리가 예수가 죽으신 후에도 실제로 교회의 택함 받은 자들에게 전달되고 적용되도록 하기 위한 예수의 구원 사역 전파의 대책 또는 방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수난과 부활이 천국 운동의 원리를 마련하기 위한 성육신의 현실적 목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역으로 오늘의 교회는 직접 오직 예수에게 뿌리를 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23~25, 여기 기록된 말씀 전파 사역과 치유 사역은 어느 특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 초기 사역 전체를 일단 개관 요약하면서 뒤이어지는 산상 수훈과 문맥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를 모세 오경과 필적시키기 위하여 서론과 결론을 뺀 나머지 부분을 5부로 나누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각 부위는 기사와 강화가 한 단락씩 어울려 1부를 다루고 있는데 본 단락은 바로 그 부분인 3:1~7:29 기사 부분의 끝이요, 강화 부분의 도입부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9:35~38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말씀 전파와 병자 치유 또는 기사와 이적은 예수의 공생애 양대 사역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첫 제자들이었다면 그분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겠습니까? 실로 어떤 분이 자신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구원의 문이라고 증거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초청했을 때 우리는 그분을 믿고 쉽게 따를 수 있겠는지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 그를 좇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의 첫 제자들의 결단은 놀라운 것이라 보입니다.

 

나에게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그분의 제자들을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며 그분의 사랑을 나누길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