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3~20)
13~16절, 본문은 앞 단락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본문과 앞 단락과의 문맥상의 연결에 주안점을 주고 고찰한 후 본문의 내용을 상기하도록 합니다.
3~12절이 그리스도인의 특성 혹은 본연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 관한 언급입니다. 그리고 전자가 그리스도인다운 성별을 강조하였다면 후자는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이 이 땅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본문 자체도 그러한 순서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사명을 빛과 소금에 각각 비유한 두 은유는, 먼저 ‘너희는 … 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신분 혹은 상태에 관한 언급이 나온 후에 비로소 ‘… 하라’는 식의 구체적 사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망각하는 자에 대한 실제적이고도 심각한 경고가 뒤따릅니다.
실로 기독교는 죄악 된 세상과 결별하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에만 몰두하는 은둔 생활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궁극적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대망하며 살아야 함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처럼 이 세상을 나그네와 행인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죄악 된 현실 논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신앙의 정도를 더욱 과감히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처럼 성도는 신앙 공동체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참여하여 이들 여러분야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되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변혁시켜나가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좁고도 험한 길이요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백배의 결실을 보게 하는 일입니다.
17~20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완성이요 마침이 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수 있는 수준으로 요청받고 있음을 원칙론 적으로 단정 짓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의미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는가를 고찰해 봅니다. 예수는 율법의 지향하는바 혹은 율법에 함축된 정신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율법은 단순히 규정된 여러 법조문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한’ 수준에 이르도록 요구하며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인 ‘아가페’를 실천하도록 요구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완성하신 율법을 우리 삶 가운데에 나타나도록 요구하십니다. 어쩌면 전통을 개혁하는 자세일지 모르나 천국의 윤리 수준은 이 세상의 종교적, 도덕적, 법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과거의 전통적인 율법을 무시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의 정신을 회복하고 그 뜻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율법의 작은 것이라도 버리지 말라는 교훈이나 그것을 잘 지키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의를 본받도록 하신 것은 좀 고무적입니다.
●작은 일에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말씀을 따라 새롭게 되길 원하며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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