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로마서 11:1~12)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자기 백성을 버렸는가?’ 하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궁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복음 배척이 그들의 불순종에 의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을 버리셨는가? 여기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민족 단위로 택한 것이지 개인 단위로 택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그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대로 되지 않고 선택된 남은 자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기 자신을 실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유서 깊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자입니다. 그는 교회에 대한 핍박자였으나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바울 자신만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동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기둥입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가 복음의 진리 안에 있는 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에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하기 위하여 구약의 엘리야 시대를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 숭배자들이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학살하고 제단을 파괴하며 마지막 남은 증인 엘리야를 박해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남은 자를 약속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팽배한 나머지 여호와를 섬기는 자는 엘리야 한 사람뿐인 것 같았으나 하나님께서는 남겨 두신 증인이 칠천 명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엘리야에게 약속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자신에게 적용했습니다. 여기에도 바울의 유형론적인 성경 해석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엘리야의 사건을 현재에 적용함으로써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한 것이며 은혜의 표징입니다. 그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중심 사상인 칭의론이 본문에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행위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의한 것이며 은혜의 선택은 유대교의 율법적 행위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변호하되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명합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비롯되며 인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바울의 논점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질문을 재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운명을 논합니다. 이스라엘의 선택된 소수, 즉 남은 자에 관하여 말한 후 이제는 이스라엘의 완악한 다수로 초점이 옮겨집니다. 선택된 자와 나머지 사람들의 대립이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전체로서는 메시아적 구원을 얻지 못하였고 선택받은 자만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다수의 완악함은 어디에 기인한 것이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다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용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무감각, 몰이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용은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경고한 저주의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자들은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입니다.
이러한 저주가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내려졌고 영적 통찰력을 상실한 그들은 결국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완약성이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사실이라는 점을 역설합니다.
유대인들의 불순종과 복음 배척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으로 남은 자들이 있으며 그들로 인하여 완악한 다수가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운명은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졌다면 그들이 완전히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것인지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에 답변을 제시함으로 이스라엘의 넘어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합니다. 바울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완악해지기는 했으나 절망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최후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사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강퍅하게 하신 목적은 이방과 유대인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이는 또한 유대인은 이방인에게, 이방인은 유대인에게 연결되는 기회가 되었고 그로써 온 인류가 종말론적인 빛 아래서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이방인에게 이르렀고 이로써 유대인들은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 수행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써 구원 계획은 완성됩니다. 유대인들의 범죄가 이방인을 구원하여 세계를 풍성히 하였다면 그들의 구원의 완성은 얼마나 더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얻은 자들은 구원을 얻은 데 비해 나머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마음이 완악해지고 말았습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외부적인 자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올바로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주위의 완악한 사람들을 바로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기 원합니다. 내가 남은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고 복음의 파수꾼으로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0) | 2018.09.25 |
---|---|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0) | 2018.09.24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0) | 2018.09.22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0) | 2018.09.21 |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0) | 2018.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