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꽈벼기 2018. 9. 24. 08:20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로마서 11:13~24)

 

하나님께서 한번 택정하신 개인과 공동체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어느 기간 동안 버려질 수 있으나 결국은 구원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동족 유대인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그들에게 구원의 회복을 가져다줄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의 제사법은 그 해 첫 수확으로 만든 떡 반죽 덩어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전체 반죽이 성화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나 뿌리는 이스라엘의 조상,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합니다. 조상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 무효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경륜에서 영원한 효력을 지닙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는 이스라엘의 근원이 성화됨으로 전체가 성화 된다고 합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여전히 거룩합니다.

 

바울은 또 다른 비유를 연결시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온 인류의 역사를 설명해 나갑니다. 본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유인 접붙임의 비유입니다. 앞에서 이스라엘의 조상은 참감람나무의 뿌리이며 이스라엘의 후손은 그 가지입니다. 생생한 가지가 벌레가 먹거나 메마르면 잘리고 대신 돌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습니다.

 

접붙임이 된 가지가 잘려나간 가지에 대하여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은혜로운 선택에 의해 접붙임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지 자체에 고유한 생명력이 있어서 지탱하는 것은 아니므로 뿌리에 대하여는 물론이고 잘려나간 가지에 대하여도 전혀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잘라내고 그 대신 이방인을 접붙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에 대한 비유이며 인류 구원사의 비밀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접붙임의 비유를 통해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의기를 높이거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잘라내고 대신 이방인을 접붙임하셨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라는 가지는 자연적으로 자란 것이 아니라 접붙여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생명은 자기들의 것이 아니고 뿌리에서 얻은 것입니다. 즉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영적 능력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방인의 행위나 열심히 유대인보다 낫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향한 열성으로 말하자면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접붙임의 원칙은 가지 자체의 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이스라엘의 다수가 잘려나갔다고 해서 이방인이 교만하여 그들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근신해야 합니다. 만일 이방인들이 자만하여 불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거침없이 잘라 버리실 것입니다. 참감람나무 의 가지인 이스라엘까지도 아낌없이 잘라내시는 하나님이시거늘 접붙인 가지를 자르기는 더 쉽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격하심에 대해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으로 이방인을 용납하시고 그들의 죄과를 지워 없애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공로나 겉모양을 보시지 않고, 믿은 자는 누구나 받아들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엄격하심은 이스라엘을 잘라 내신 행위에서처럼 이방인에게도 행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른 이방인은 잘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교만하지 말 것이며 지금 완악함으로 인하여 선민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은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감람나무의 가지인 그들이 믿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명실공히 선민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면 본래의 가지들이 자기 나무에 도로 접붙임을 받는 일은 더 쉬운 일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감람나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희망을 논하였습니다. 그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처럼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 그리고 그분의 권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에 생기를 돋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그분을 붙잡고 의지한다면 이스라엘은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바른 삶을, 영생의 삶을 가지는 길입니다. 오직 그 길만이 우리가 참다운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지며 살게 하는 방법입니다. 아무도 스스로 교만하여 자랑할 수 없는 은혜로의 접붙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참된 접붙임을 항상 유지하여 자기가 처해있는 형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삶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악들이 나의 생활에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방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의 구원을 감사드리며 택한 백성으로서의 길을 가게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