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116:12~117:2)
12~14절, 다윗은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끼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어떠한 인간적 보답도 하나님께 만족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서원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구원의 잔’을 들고 나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구원의 잔’이란 감사의 화목제를 드린 후에 그 희생 제물을 기억하면서 마셨던 것을 가리킵니다. 좀 더 영적으로 생각하면 ‘구원의 잔’은 ‘고난의 잔’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겠다는 전적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의 모습을 본받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15~19절, 하나님을 향한 서원 이행을 결심한 시인은 이제 과거에 죽음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표현합니다. 비록 성도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인간은 종종 위험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절망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며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자랑하며 자고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택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자신의 감사를 좀 더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13, 14절을 다시 반복합니다. 이것은 시인의 간결하고 솔직한 마음의 표시로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자녀 된 사실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특히 시인은 모든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구석에 움츠러들어서 은밀하게 찬송하지 않았고 모든 회중이 동참할 수 있도록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경배를 여호와의 제단에서 합법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117:1~2절, 1절에서 말하는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진정한 찬송은 참 신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혜택 밖에서 사는 나라나 백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며,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셔서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하는 것은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보내신 사건에서 명백해집니다. 우리는 그분의 크신 인자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인자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인자하심의 무궁함이 어떠한가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하시며 그분께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그분은 참되시며 우리에게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시인이 기도를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신앙의 귀결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금 기도할 것을 서원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동행하는 삶은 언제나 형통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만 아니라 기도 응답에 대한 보답을 위해 서원하는 확고한 신앙 의지를 나타내길 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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