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
(마가복음 14:1~11)
본문에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과 한 여인의 헌신적 행위가 선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가룟 유다가 변절하게 된 동기에 관해서는 여기서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여인의 향유 사건이 지니는 의의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여인의 간절하고 뜨거운 심령을 가졌다는 사실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의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는 일반 노동자의 일 년치에 해당하는 엄청난 값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로서 가난한 서민에 불과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그토록 값진 향유를 부은 것은 가장 귀한 것으로, 혹은 자신의 전부를 주께 바치고자 하는 온전한 헌신의 표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열성을 가지고 청종하였으며 특히 그 오빠 나사로를 주께서 살리시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신성을 굳게 확신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마리아의 심적 상태를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온 세상이 주를 부인할지라도 자신은 주를 따르겠노라는 전폭적 믿음의 표시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이 여인이 엄청난 값의 향유가 든 옥합을 깨트린 것은 오직 주만 따르겠다는 결단의 표시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귀중한 옥합을 서슴없이 깨트릴 수 있었기에 그 여인은 예수님의 뒤를 쫓아 험한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갈 수 있었고 , 또한 주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밑에 지켜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
현대인들에게는 양심이니 신앙이니 하는 것이 낡은 유품으로 여겨지기에 십상이며, 재물과 탐욕 그리고 음란과 향락에의 유혹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온갖 유혹들을 과감히 깨뜨리고 일어서는 양자택일의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당시에 강조하고자 하셨던 것은 임박한 죽음 앞에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는 이별의 말입니다. 그 속에는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최후를 맞을 준비이지 앞으로도 계속해야만 할 빈민 구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우치고 계십니다.
더 중하고 긴급한 것이 있으니 ,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실로 빈민의 구제가 이웃의 물질적 요구를 채우는 것이라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그 이웃의 전체적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가장 중요시하는 것부터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베다니의 여인은 예수님께 값진 향유를 바쳤고, 귀한 시간을 바쳤으며, 뜨거운 정성을 바쳤습니다. 표면만 보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낭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 바쳐진 그것이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한 궁극적으로 나를 유익되게 하는 거룩한 낭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얼마나 귀중하게 보셨던지 제자들을 향하여 가는 데마다 그 여자의 아름다운 헌신을 들려주고, 기념토록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베푼 사랑을 쉽게 비판하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행위와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고 그로 인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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