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

꽈벼기 2018. 1. 29. 08:02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11:19~30)

 

본격적 이방 전도의 때가 안디옥을 중심으로 무르익어 감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특히 박해로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사실은 독특한 의미가 있습니다. 빌립에 의해 전도 받은 사마리아인들은 반 유대, 반 이방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 의해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 고넬료 또한 이방인이었으나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자입니다.

 

반면 안디옥에서 전도 받은 자들은 소위 순수한 이방인들로서 최초의 복음과 접촉한 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바울의 활약이 안디옥 교회를 거점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안디옥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설립케 하심으로써 유대적 요소와 전혀 무관한 순수 기독교회를 통하여 이방 선교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설립의 직접적인 발단은 8장의 언급대로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본격화된 핍박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핍박은 주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보이며,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익명의 전도자 역시 핍박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들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합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의 파견으로 오히려 새로운 국면에 돌입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적, 물적 부흥의 도래입니다. 바나바로 인해 안디옥 교회는 괄목할만한 부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바울과의 협동 목회로 영적으로 든든히 서게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지칭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안디옥 교인들에게서 유래됩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협동 목회는 안디옥 교회의 물적 부흥과 영적 부흥을 동시에 일으켰거니와 그들이 세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영적 부흥의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을 지닙니다.

 

또한, 여기서부터 사울의 역할 전환입니다.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역시 같은 헬라파 유대인인 스데반을 처형하는 일조를 했고 그 결과 많은 헬라파 유대인이 핍박을 피하여 베니게와 구브로를 지나 안디옥에까지 흩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이방인들의 집단적인 개종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에 헬라파 교회는 헬라파 유대인인 바나바를 파견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사람들의 개종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확인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을 초빙하여 함께 공동 목회를 했습니다.

 

팔레스틴의 기근 때 안디옥 교회는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움으로써 교회의 일체감과 연대 의식을 발휘합니다. 앞서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지도자를 파송하여 영적 부흥에 일조하였고 여기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금을 보낸 사실은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는모범적 예를 보여줍니다.

 

특히,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으로서 자기들을 쉽사리 용인하지 않으려 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어려움을 돌아본 것은 그들이 민족이나 지역에 구애되는 편협한 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성과 지체 의식을 깨달을 줄 아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죄악이 가득한 곳에서도 세인의 칭찬을 받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진주가 진흙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악 된 세상에서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하게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의 교회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된 사명을 다하고 있어야겠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과 동역하기에 불편한 것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영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 가운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도와 구제에 힘쓰는 서로 협력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