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호세아 1:1~11)②[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꽈벼기 2024. 11. 24. 18:17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호세아 1:1~11)

 

품행이 좋지 못한 여자와의 결혼 생활은 만민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합니다. 과연 음행하는 아내를 거느린 선지자의 훈계가 효력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의 있지만, 당시의 상황이 이스라엘의 패망을 앞두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의외의 방법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전달합니다.

 

고멜과 결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호세아가 순종하였음을 전하며, 세 자녀의 이름이 주는 의미를 전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의 동기가 이스라엘의 배반에 있음을 알려주시면서 말씀 계시와 더불어 행동 개시, 호세아의 생활을 예언의 도구로 삼습니다.

 

호세아와 결혼한 고멜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후부터 그분은 끊임없이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본 남편을 버리고 아무 남자나 불러들이는 창녀와 같이 주변 나라의 온갖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거역하며 육신적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회개를 촉구하는 상징적인 메시지는 호세아가 낳은 세 자녀의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첫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로 이스라엘이 과거에 범했던 대표적인 죄악인 아합과 예후의 죄를 연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 자는 예후입니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도 심판을 선언합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사역을 수행하여 아합의 후손인 요람과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와 그 일가 42명을 살해한 일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예후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보다는 자신의 권세욕에 빠져 잔혹한 죄를 범했습니다. 살룸이 예후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므로 예후 왕조는 무너집니다.

 

두 번째로 태어난 딸은 로루하마입니다. ‘다시는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두 자녀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파기를 연상하며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전합니다.

 

이와 달리 유다 족속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생존할 당시에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는 우상 숭배와 그들의 활, , 창 등 무력에 의존하여 외세를 물리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도가 헛됨을 지적하면서 소망이 오직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미래에 아브라함 언약의 궁극적 성취가 이루어지며 신정 정치의 회복과 남북 왕조의 통일이 되며, 메시야의 도래 등의 상황이 추측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약속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민들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처해 있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구원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힘이 듭니다. 죄를 범하는 자신에게 절망합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한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고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께 구원의 손길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는 미쁘시고 의로워 결단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허용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며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죄를 위한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될 것으로 압니다.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하길 원하며, 하나님을 섬기되 성실함으로 하게 하시고 이웃을 섬기되 끝까지 사랑으로 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