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열왕기하 25:8~30)②
8~12절, 외형적으로 예루살렘의 영광을 과시하던 모든 건물이 불타버리거나 헐리어지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자체가 자신들을 죄와 형벌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이 없이 자기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성전이나 왕궁, 그리고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이 모두 불타버리거나 헐리어지자 그들의 자존심과 교만함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그리스도 없는 어떠한 인간적 자랑도 성립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억압하던 자들은 모두 사로잡혀 가고 그 땅과 포도원은 비천한 자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교만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주시고 비천한 자들에게는 부유함과 평화와 안식과 자유를 주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3~21절,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처참한 고통과 비극적인 현실을 경험하는 유다 백성들의 실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은 바벨론의 시위대 장관인 느부사라단에 의해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기구가 파손되거나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사건을 기록한 13~17절과 앞 단락의 8~12절과 직접 연관된 기사인 유다 지도자의 처형을 다룬 18~29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이 갈대아 군사(바벨론의 군사)에 의해서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되었던 바인데 실제로 이 성전의 기구 중 일부는 이미 느부갓네살의 1, 2차 침공 때 바벨론으로 옮겨졌고 또 한 번 본문에서 그 나머지를 거두어 가는 것이 언급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지은 성전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 내부에 있는 모든 기구도 이방인들의 손에 붙여 노략질을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외형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죄에 대해 크게 진노하셨다는 심판의 표시이고 암시적으로는 메시야, 즉 인류의 구원자가 오실 때 외형적인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제도가 폐하여지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될 것에 대한 징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성전을 하나님께서 버리셨다는 사실은 지상적이고 가시적인 건물인 성전이 절대 궁극적이고 영원한 예배의 장소가 될 수 없음을 확증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후반부(18~29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유다의 지도자, 즉 제사장급과 정부 관리 중의 몇 사람, 그리고 민간 지도자들 60명을 처형한 것은 바벨론에 대해 다시는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한 조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죽은 지도자들은 시드기야에 반 바벨론 정책을 취하게 하고 친 애굽 정책을 펴도록 주장한 자들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 이하의 22~26절까지는 유다 멸망 이후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의 행적들로 친 바벨론주의자들과 국수주의자들 간의 갈등을 그린 기사로 이러한 추정을 더욱 신빙성 있게 해줍니다.(예레미야 52:17~23절 참조)
22~30절, 남유다의 멸망 후 그곳에 남아 있던 자들의 행적을 간단히 적은 22~26절과 바벨론에 잡혀간 여호야긴 왕 말년의 상황을 그린 27~30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 땅에 실시한 정책은 될 수 있는 대로 남아 있는 유다인들의 감정을 손상하지 않도록 하는 온건한 방침입니다.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로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로 총독을 삼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달리야의 조부인 사반은 서기관 출신으로 요시야 왕 때에 큰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며, 그의 부친 아히감도 왕의 사절단이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달리야는 상당한 명문가 출신으로서 유다 백성들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사람을 총독으로 내세워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회유했습니다.
그달리야도 이러한 바벨론의 유화정책에 순응하여 그 땅의 백성들을 잘 화합시켜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를 위한 최우선적인 방법이 유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리를 불러 모아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그달리야의 주장은 예레미야의 예언과도 잘 부합되는 것이어서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과격한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달리야의 행정은 그가 살해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25절) 그런데 그달리야를 죽인 자들은 친바벨론 정책을 주장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로서 끝까지 자신들의 힘으로 유다를 회복시키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후환이 두려워 결국 국수주의자들은 암몬으로, 그리고 다른 무리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가게 되었는데(26절) 이것은 신명기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옛 종의 멍에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본문의 후반부에 언급한 여호야긴 왕의 회복 기사는 고토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성취의 발아적 사건으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러 왔을 때 즉시 항복한 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투옥되었다가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에 의해 37년 만에 석방되고 적절한 지위를 얻은 기록입니다. 본 사건은 포로된 유다 백성들이 본토 귀환이라고 하는 소망을 조금이라도 지닐 수 있게 한 긍정적인 징조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히스기야 이후 지속된 음울한 유다 역사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저자의 의도적인 끝맺음으로서 포로된 자들에게 새로운 소망의 여운을 던져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왕으로서 종주국인 바벨론에서 당한 치욕과 망국의 한을 되씹었을 여호야긴의 고통을 짐작해 볼 때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했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살펴볼 때 남북 왕국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함께 택한 백성의 회복이라는 여호와의 자비로운 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주권적 섭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호와긴 왕의 운명에 대한 간략한 묘사는 유다가 미래에 맞이할 구원의 소망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명기적인 축복의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나므로 고통가운데 있어본 경험은 없는지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신 소망이 나의 삶에 어떤 위로가 되는지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주의 인자를 바라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