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예레미야 45:1~46:12)
45:1~5절, 본 장은 유다에 대한 예언 마지막 장으로 내용상 36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당시 바룩은 성전 출입 금지령을 받은 예레미야를 대신하여 성전에 올라가 장차 유다에 임할 징계를 선포하게 되고,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바룩에 의하여 기록되고 선포됩니다. 그런데 바룩은 자신이 기록한 메시지로 인하여 서글펐으며 또한, 동족들이 받게 될 징계와 자신의 고난으로 인하여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택한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이 훨씬 더 큼을 가르침으로써 바룩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짧은 메시지는 36:1~8절의 보충적 내용으로서 바룩의 생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룩은 당시부터 예레미야의 서기관으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항상 예레미야와 함께 가며 때때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바룩은 본서 전체에서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에 관하여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유다 백성으로서 예레미야 개인의 서기관이 아닌 하나님의 예언 사역의 한 사역자로 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룩의 슬픔과 확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바룩은 자기가 예레미야의 명령으로 거룩한 예언 내용으로 인하여 심각한 낙담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예레미야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슬픔을 더해 주셨다고 느끼게 되었고,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룩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신앙의 감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으신 것을 참으로 파괴하고, 심으신 것을 뽑아버릴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은 범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룩에게 실망하지 말도록 권고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기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사방에 재앙이 있을지라도 바룩에게 피할 길을 내시며, 은혜로 보호하여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바룩은 같은 시대 사람인 하박국과 같이 모든 상황이 비관적으로 보일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참혹한 민족적 심판이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에게서 온 확고한 소망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바룩의 신앙은 희망 없는 재앙의 현실 속에서도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하여 언약을 유지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를 가시적으로 엿보게 하는 좋은 실례가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경고와 더불어 택한 자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입각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신뢰하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6:1~12절, 이방에 관한 심판 예언의 첫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애굽의 패배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애굽이 소유한 강력한 군사력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패배에 대해 부르짖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방에 관한 예언 중에서 애굽에 관한 예언이 제일 처음 등장하는 이유는 첫째로, 애굽에서의 유다인들의 형태와 하나님의 경고를 진술하고 42~45장과의 논리적 연결을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유다가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며 선지자들의 심판 메시지를 거부한 직접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애굽에 대한 강한 의존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애굽을 열방 심판 예언의 선두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손꼽히는 애굽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무참하게 패배하게 됨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조롱 섞인 어조로 애굽의 군대를 불러 방패를 준비하여 바벨론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병들은 말들에게 마구를 채워 올라타고, 보병부대는 창과 무기를 갖추고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애굽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빠른 공격으로 애굽 사람들은 두려워하였으며 공포에 질린 군사들은 다급하게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외견상 말들과 마부들로 구성된 애굽 군대의 물결은 마치 힘 있는 강의 굽이침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애굽이 막강한 군대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싸움의 날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쳐서 패배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또한, 애굽인들이 길르앗에 가서 유향을 취하여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할지라도 허락하지 않으심으로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들의 고뇌의 아우성과 신음 소리는 애굽이 수치를 당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무리 강한 나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리하시는 분이십니다.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능력과 수단이 아무리 강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해 나아가는 데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인적인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바룩은 위대한 선지자였으되 죽음과 영예, 그리고 민족의 멸망 앞에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도구로 택함 받은 그릇일지라도 그릇 행하면 경고를 하십니다. 그러나 회복의 약속과 더불어 주십니다. 오늘날의 성도는 바룩과 같은 실수를 범할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날로 흉포화되어 가고, 인간 심성은 편익과 영광을 집요하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목숨보다는 신앙을, 헛된 장망성(將亡城)을 쌓기보다는 분복에 자족할 줄 알며,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좇아야 할 것입니다.
죄인의 멸망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목을 분명히 논증하신 다음에 심판의 형벌을 내리십니다. 애굽은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유혹하였기에 결국 멸절의 운명을 맞았습니다. 고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시는 길에서 속히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은 어디든지 기쁨으로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죄악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진리의 나팔수로 쓰임 받도록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세상을 향한 나의 관심으로 주의 길을 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