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사도행전 21:1~16)②[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꽈벼기 2024. 6. 16. 22:17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사도행전 21:1~16)

 

밀레도에서 두로를 지나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인들과 뜨거운 작별을 뒤로하고 순조롭게 행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움 없이 고스를 통과하여 로도, 바다라, 베니게를 거쳐 두로에 도착하여 이레를 체류합니다.

 

바울은 목적한 곳을 여행하는 중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는데 힘씁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바울의 여행은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복음을 확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바울의 일행은 또다시 두로의 제자들과 애정 어린 작별을 하고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서 휴식을 취한 뒤 도보로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약 보름 동안 기거한 후 예루살렘을 목전에 두고 오랜 기간을 머물렀던 이유는 그동안 여행에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고 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수난 예고는 두로에 있는 제자들에 의한 것으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수난당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바울에 대한 인간적인 뜨거운 애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다음 수난 예고는 선지자 아가보에 의한 것입니다. 아가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예언자로서 극심한 흉년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는 빌립의 집에 머물고 있던 바울의 일행을 찾아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결박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묶음으로써 바울이 그처럼 될 것을 표현한 아가보의 예언 역시 행위 예언으로서 정확한 것이었으며, 가이사랴의 성도들도 이 예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가보는 바울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두로의 제자들과 같이 그의 예루살렘 행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복음을 위한 바울의 헌신적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며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까지도 각오하였음을 선언한 바울은 사사로운 인정이나 감상으로 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우를 범치 않았습니다. 예수를 본받아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여전히 갈등과 대립이 있었던 까닭에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화평을 누리기를 소원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자 했던 바울의 복음 사역은 죽음까지도 불사한 것이었고 그러한 비장한 결심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중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명들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걸어간 가 길과 그의 사명 의식을 묵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주님 주신 복음 사역 앞에 감사와 감격을 금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순교자의 각오로 삶을 살았던 자가 바로 바울이요, 그것이 바울의 사명의식인 것입니다.

 

형제의 장래를 위해 안타깝게 기도해 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내 장래를 미리 알려고 하지 말고 순간순간 하나님께 순종하며 섭리에 따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