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사도행전 15:12~35)②
12~21절, 베드로의 발언은 바울의 이방 사역이 결국 하나님의 뜻과 부합된다는 것이었으니 이에 힘입은 바나바와 바울은 다시금 그들의 이방 사역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우신 표적과 기사를 낱낱이 증거하였습니다. 이 당시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공적인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유대인 선교의 선구자로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베드로 및 바나바와 바울의 증언은 논쟁의 전환점을 이루었거니와 이제 예루살렘 공의회는 진리 편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증언이 끝나자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은 이제 야고보에게 시선이 집중됩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였으며 경건한 유대주의자였습니다. 야고보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도들의 증언을 보충 설명합니다. (암 9:11, 12)
그의 논지는 베드로의 언사가 선지자들의 말씀과 합치된다는 것이니 이방인의 구원은 종말론적인 사건으로서 하나님 뜻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야고보는 할례나 기타 율법 의식이 절대 구원을 위한 조건이 아니므로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 개종자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혜인 까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 신자들과 이방 신자들 사이의 원만한 교제와 전도 사업을 위하여 이방 신자들이 일부 관습을 삼가도록 하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 네 가지 요구 사항은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그리고 피를 먹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의는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제적 차원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이방인들의 신앙 성숙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2~35절, 야고보의 판정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동의하였으니 이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특권자들만의 회의가 아니었으며, 야고보를 의장으로 하여 회중들이 함께 심의에 관여한 회의였음을 말해줍니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내린 결의 사항은 교회 역사상 최초로 공문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공의회의 결의를 성령의 결정으로 못 박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결의 사항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문으로 된 서신은 야고보의 제안, 즉 네 가지 금지 사항에 관한 규정이 순서만 조금 바뀐 채 반복하고 있으며, 율법으로 인하여 이방인 신자들을 괴롭히지 않겠노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뜻으로 말미암아 채택된 결의안은 당시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의 첨예화된 갈등을 적절히 해소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방인이 율법의 의무에 구애되지 않아도 된다는 공의회의 결의 사항은 이방 선교와 이방인 신자들의 입장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또한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니 이로써 이방 사역자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이방 전도는 활기를 띠고 새롭게 전개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바울과 바나바 이외에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 교회로 공식 파송하여 회의 결과를 전하게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공의회의 결의 사항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유다와 실라는 회의 결과를 전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계속 머물면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공의회의 결의 사항을 성령의 결정으로 못 박고 있다는 사실은 바울의 이방 사역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본문의 사도 회의에서 비록 바울은 중요한 인물로 주목 받고 있지 않지만, 바울이 주도한 이방 사역이 하나님의 뜻으로 해명되고 사도들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게 됨에 따라 이방 선교의 개시 단계는 마무리되고 절정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기독교 복음이 유대 전통이라는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땅끝까지 행해 나아가기 위해 힘겨운 전통을 겪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확장에 있어서 성령께서 간섭, 섭리, 인도하셨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순종하는 신실한 일꾼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처음 전한 말씀을 복음이라고 한다면, 유다와 실라가 전한 말씀은 일종의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성령과 복음을 해석하는 데서 일어난 차이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최초의 교리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이 되었으며, 또한, 그것을 전한 사람들에게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굳게 하려는 열정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교리적인 결정을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교리 자체를 위해서 전하거나 가르치는 것도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서 복음을 오해하는 일이 없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길 기도합니다.
교회의 결정을 소홀히 여기고 내 주장을 세우는 일은 없습니다. 또 반대로 교회의 교리를 고집해서 말씀이 가진 생명력을 막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