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사도행전 14:1~18)②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꽈벼기 2024. 5. 31. 22:28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사도행전 14:1~18)

 

1~7, 바울의 1차전도 여행은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로 끝을 맺습니다. 바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 쪽을 택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고니온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철저히 로마 화된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인종적으로는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등이 골고루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훗날 이곳은 선교 확산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할 때 항상 뒤따랐던 결과는 사람들의 양분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양분된 사람들의 다른 반응은 복음의 수용과 거절이라는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전파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고니온 지방 선교는 허다한 무리의 복음 영접과 유대인들의 박해라는 양분된 여론 형성과 여기에서 일어나 분쟁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분쟁의 현상은 일찍이 예수의 사역 가운데 항상 뒤따랐던 반응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 결과가 이웃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분쟁과 불화까지 일으킬 수 있음을 제사하였고 아울러 복음 전파가 일으키는 분쟁에 동요하지 말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바울 일행이 이고니온에서 핍박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저들은 먼저 몸을 피신합니다. 바울 일행이 이고니온에서 극한 핍박에 직면하여 루스드라와 더베 성으로 피신한 것은 전도자의 지혜로운 처신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을 주체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고 관원들이었습니다. 이 중에 특히 유대인들은 적극적인 주체로, 나머지는 소극적 주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복음 전도자들을 핍박했다는 데에 합일점을 가졌습니다.

 

복음의 대적자들은 바울 일행을 박해하기 위해서 선동과 폭력 등과 같은 비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했지만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설파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진리와 비진리의 접전 싸움은 이미 판결이 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진리의 세력은 폭력과 선동에 의지할 때부터 그들의 정당성은 상실했다고 하겠습니다.

 

9~18, 루스드라의 주민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을 숭배했던 것을 전해집니다. 더욱이 이들의 우상 숭배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그들의 저급한 문화 수준과 문맹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신비한 전설에 대해 루스드라 주민들이 바울 일행의 기적을 보고 그들을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의 방문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기인합니다.

 

이 같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주민들에게 바울과 바나바의 기적은 그들의 지나간 잘못을 상기시켰음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또다시 자신들의 지역을 방문한 두 신을 소홀히 취급한다면, 또 다른 재앙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걷게 했던 바울 일행을 신처럼 섬기려 제사를 준비한 것은 어쩌면 이들의 신개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루스드라 주민들의 잘못된 신개념에 대한 바울 일행의 신개념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선천적 불구자인 앉은뱅이를 치유한 바울의 행동 동기는 절대 능력의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앉은뱅이에게서 완치의 가능성인 믿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치유의 근원이 바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확연히 보여줍니다. 또한, 바울의 신개념은 루스드라 주민의 제사를 거절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바울 일행의 단호한 거부는 비상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강렬한 거부의 몸짓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의 행동은 인간의 신격화나 우상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유일신 하나님 신앙의 표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사람은 누구나 예수의 증인이 될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의 증인 된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수고와 봉사를 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죄와 물질과 사상 등 온갖 것에 의해 노예화하는 일을 경계하며.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간 이상의 대접을 받으려 하거나 신격화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남들이 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때 나는 겸손의 자세로 대처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그리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