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32~52)
32~43절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인해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속 역사로 인한 은혜는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은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인간은 계속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실패를 뛰어넘어 구원의 목적을 성취해 나갑니다. 궁극적으로 예수께서 구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는 극에 달했고 약속하신 구원의 계획이 모두 완성합니다. 믿는 자마다 이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 땅 이외에 존재했던 회당은 주로 흩어진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들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이곳을 통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신앙적 결속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회당들이 이방인 세계에 있었던 관계로 약간의 이방인들도 이곳에 출입 했으며 이들은 성경에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언급되었습니다.
이들 이방인은 자신의 거주지에 있는 유대인들과 회당을 통해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갖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따라서 회당에서의 사도 바울의 설교는 이들 이방인에게는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이 회당을 이용할 때에는 이들 경건한 이방인들까지 염두에 두고 설교를 했습니다.
44~52절,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은 부동의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유대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회당을 이용했던 것은 그의 선교 전략적 용어를 빌리자면 유대인들의 시기를 촉발하기 위해서입니다. 회당에서의 복음 전파 이후 이방인들의 열렬한 복음 수용은 유대인들의 엄청난 시기를 일으켰는데 바울은 유대인의 소수라도 구원할 요량으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의 사도로 자처했지만, 인지상정인지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애초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던 사람으로서, 그의 회당 출입은 절대 그의 이방 사도직의 위임을 회석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히려 그가 이방인 선교에 매우 용의 주도한 계획을 세우고 임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됩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마치고 나갈 때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고 합니다. 그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렸기 때문에 이방인에게 향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했으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했고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중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었습니다.
두 번째 안식일에는 그 성의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의 전도 여행 중에 줄곧 뒤따랐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전도 후의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예상하고 믿음으로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도하여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말씀에 대해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도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전하기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고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복된 소식은 죄 사함과 죄에서 자유로움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그 믿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칭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순간에 하나님이 ‘무죄’라고 선포하시는 행동입니다. 매일 용서 받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믿지 않는 이에게 미칠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을 먼저 감사하면서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믿도록 권면해야 할 책임을 느낍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에게 논박했고, 더 나아가서 본격적으로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더니 마침내 내어 쫓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방해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향해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려움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권면하기 원하지만, 오늘도 만나는 사람 없이 집에만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주님께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수록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복음을 전한 후 좇지 않은 반응 때문에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